웰빙 아웃도어… “Go! Go! 자연 속으로”

  • 입력 2009년 7월 30일 03시 00분


북한산 백운대 암벽에 포터레지를 설치한 뒤 걸터앉자 서울의 야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부슬부슬 내리는 안개비 속에서 허공에 매달린 채 끓여 먹은 라면 맛은 평생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사진 제공 이정식
북한산 백운대 암벽에 포터레지를 설치한 뒤 걸터앉자 서울의 야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부슬부슬 내리는 안개비 속에서 허공에 매달린 채 끓여 먹은 라면 맛은 평생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사진 제공 이정식
국내 웨이크보드 1인자 박성준이 물살 위로 날아오르고 있다. 웨이크보드는 점프와 공중회전 묘기로 스릴을 만끽할 수 있는 수상 스포츠다. 사진 제공 탑피알
국내 웨이크보드 1인자 박성준이 물살 위로 날아오르고 있다. 웨이크보드는 점프와 공중회전 묘기로 스릴을 만끽할 수 있는 수상 스포츠다. 사진 제공 탑피알
발아래 세상… 바위 매달려 이색 하룻밤!

《장마 끝, 무더위 시작. 덥다고 실내에만 있기엔 우리 인생이 너무나 소중하다. 올여름에는 작열하는 태양에 한번 맞서보자. 참살이 시대인 요즘은 아웃도어맨이 대세다. 청계천변을 산책하든지, 암벽에 매달려 비박(飛泊)을 하든지 난이도는 중요하지 않다. 떠나라, 열린 세상을 향해.》

■ 북한산 비박(飛泊) 체험기

해발 836m의 북한산 백운대. 정상을 감싸고 있던 먹구름이 점점 짙어진다 싶더니 하필 등반이 시작되자 비를 뿌리기 시작했다. 분무기로 뿌리듯 가늘던 빗방울은 앞서가던 정승권 선배가 곰바위에 올라섰을 때 겉옷이 젖어들 정도로 굵어졌다. 헬멧에서 떨어지는 차가운 빗물이 얼굴을 타고 목덜미로 흘러들어가 소름이 돋았다.

‘내려가야 하나?’ 피톤(로프를 걸기 위해 바위에 박아 넣은 금속 고리)에 안전벨트를 연결한 뒤 우리는 한동안 발아래 세상을 내려다보며 침묵했다. 비에 젖은 숲에는 빠르게 어둠이 스며들었다. 날이 저물며 다행히 비는 잦아들었다.

“시작하지?” 오랜 등반 경험으로 날씨 변화를 꿰뚫는 정 선배는 포터레지를 설치하기 위해 하강했다. 날은 완전히 어두워져 헤드랜턴을 켜야 했다. 포터레지는 오르는 데 며칠씩 걸리는 거대 암벽에서 등반 중 잠을 자기 위해 고안된 휴대용 침대. 절벽에 매달 수 있게끔 고안된 이 특수 장비는 ‘휴대할 수 있는(Portable) 선반(Ledge)’의 합성어로 초기 모델의 상품명이 그대로 보통명사로 굳어졌다.

어둠 속에서 수직의 바위에 매달려 포터레지를 조립하고 설치하는 것은 쉽지 않은 작업이나 정 선배는 5분여 만에 뚝딱 설치를 끝내고 내게 내려오라며 손짓한다. 자신의 이름을 딴 정승권등산학교의 교장인 정 선배는 1988년 대한산악연맹의 에베레스트 원정 때 정상을 밟은 이후 고산 등반보다 암벽 등반에 집중해온 ‘클라이밍 머신’이다. 트랑고, 아콩카과, 엘캐피턴, 하프돔 등 거대 암벽을 두루 거쳤다.

국내 암벽은 길이가 짧아 하루에 오르내릴 수 있기 때문에 거벽 등반을 겨냥한 훈련이 아니라면 포터레지를 사용할 일이 없다. 그럼에도 우리가 궂은 날씨 속에 북한산의 그다지 크지 않은 바위에 매달려 포터레지 비박을 감행한 것은 9년 전 약속 때문이었다. 2000년 나는 정 선배와 엘캐피턴의 레티센트월 원정 등반을 함께했으나 3피치째에서 휴가 기간이 만료되는 바람에 후퇴해 혼자 귀국해야 했다. 당시 정 선배는 후배 이민호 씨와 8일 동안 바위에서 먹고 자며 등반을 계속해 결국 성공했다.

뜨거운 캘리포니아의 바위벽에서 헤어질 때 정 선배는 낙담한 내게 “한국에 가서 포터레지 비박 한번 하자”고 했다. 내가 거벽의 포터레지 야영에 특별한 의미를 두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오늘에야 9년 전 엘캐피턴에서 쓰던 바로 그 포터레지에 웅크리고 앉았다.

포터레지는 처마 밑 제비집과 흡사하다. 2인용이라도 두 명이 편안히 눕기엔 옹색했지만 엘캐피턴의 추억을 화제 삼아 하룻밤을 보내기엔 충분했다. 발밑이 허공인 포터레지에선 모든 걸 매달아 둬야 한다.

오후 10시께 구름이 걷히고 별이 보였다. 남동풍이 불어 축축해진 옷은 고슬고슬 말랐다. 우린 몽환의 바위벽에 매달려 별과 야경을 번갈아 바라보며 쉬 잠들지 못했다.

글=익스트림스포츠 칼럼니스트 송철웅

blog.naver.com/timbersmith

발아래 물… “물찬 제비처럼”

■ 웨이크보드 1인자 박성준씨

마치 곡예와 같다. 보트에 연결된 줄을 잡고 좌우로 흔들대다가 물살을 타고 2m도 넘게 공중으로 날아오른다. 아찔한 점프 동작도 모자라 공중에서 빙그르르 한 바퀴 돈다. 여름철 수상 레포츠의 꽃 웨이크보드 얘기다.

1990년대 중반부터 국내에 선보이기 시작한 웨이크보드를 전문적으로 타는 프로 선수는 남녀 50명 선. 이 가운데 최고수는 누구일까. 대한수상스키·웨이크보드협회 이영묵 운영과장은 이렇게 말했다. “남자부에선 박성준, 김용일 선수가 수년간 양강 체제를 유지했는데, 요즘은 박성준 선수가 두드러진다. 동작의 크기와 완결성에서 약간 앞선다.”

박성준(30)은 지난해 춘천에서 열린 국제수상스키연맹(IWSF) 웨이크보드 국제대회에서 그룹3 부문 아시아 오세아니아에서 우승을 거뒀다. 동양인이 우승을 차지한 것은 처음이었다. 그는 이달 중순 대만 가오슝에서 국제월드게임협회(IWGA)가 주최하는 제8회 월드게임스에 동료 2명과 함께 웨이크보드 한국 대표로 처음 출전했다. 그는 메달 획득에는 실패했지만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박성준은 이색 경력의 소유자다. 다섯 살 때부터 태권도를 시작해 공인 3단이다. 태권도 사범으로도 일했다. 하지만 스무 살 때 처음 스노보드를 타면서 ‘널빤지’ 위에서 펼치는 속도의 쾌감에 푹 빠졌다. 그리고 2001년 웨이크보드로 전향했다. 보드 위에서 11년 동안 미쳐 살았다. “스노보드는 혼자서 잘 타면 그만입니다. 하지만 웨이크보드는 보트 운전자와 호흡이 맞아야 합니다. 더 까다로워요.”

박성준은 지난해 기업(HIPC와 강경수상레저)과 연봉 계약을 맺고 안정적인 훈련 여건을 마련했다. 충남 논산시 강경읍에서 회사 직원들과 숙식을 해결하고 근처 금강에서 물살을 가른다.

여건이 좋아졌다고 마냥 연습만 할 수 없는 게 웨이크보드다. 한꺼번에 힘을 쏟아내야 하기 때문에 10∼20분만 보드를 타면 탈진 상태가 된다. 이 때문에 하루 두세 번 실전 훈련을 한 뒤에는 쉬어야 한다. 초보자들이 무작정 보드에 매달렸다가는 금세 기진맥진하기 쉬우므로 조심해야 한다는 게 그의 얘기다.

“웨이크보드를 잠깐 재미로 타는 게 아니라 제대로 배우고 싶다면 근력을 먼저 키워야 합니다. 우선 수영이나 웨이트트레이닝으로 몸을 만든 다음에 웨이크보드의 세계에 도전하세요.”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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