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한기흥]‘미스터 스마일’의 눈물

  • 입력 2009년 7월 27일 02시 57분


이순(耳順)을 목전에 둔 남성이 남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건 가부장적 전통이 강한 한국에선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그 눈물이 사사로운 감정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면 더욱 그렇다. 22일 오후 미디어관계법이 국회를 통과한 뒤 정세균 민주당 대표(59)가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TV로 봤다. 평소 온화한 인상에 웃음이 많던 그의 뺨에 흐르는 눈물이 무겁고 복잡한 의미로 다가왔다.

정 대표는 사력을 다해 막으려던 법이 통과된 데 대한 분노와 회한에 몸을 떨었다. 급기야 24일 “소중한 의원직을 버리고 국민과 함께 싸우겠다”고 선언한 뒤 25일 서울역 광장에서 쉰 목소리로 이명박 정권에 대한 투쟁을 부르짖었다. 정치인이 원외로 나가면 얼마나 추운지 모를 리 없는 그가 승부수를 던진 건 현 시국을 그만큼 심각하게 보기 때문일 것이다.

‘투사 정세균’은 그가 걸어온 길에 비춰보면 상당히 낯선 모습이다. 그는 대학 졸업 후 1978년부터 1995년까지 17년을 쌍용그룹에서 일하며 상무이사까지 지냈다. 이 기간 중 절반 정도를 미국에서 근무했고 미국 대학원에서 행정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96년 15대 총선 때 정계에 입문한 뒤 내리 4선을 했고 노무현 정부 시절 산업자원부 장관을 지냈다. 반면 민주화운동을 하다 옥고를 치르거나, 낙선의 쓰라림을 겪은 일은 없다. 3월 공개한 재산은 26억5568만 원에 이른다. 비교적 순탄하게 ‘파워 엘리트’로 성장한 그의 경력은 ‘투쟁’과 ‘타도’를 입에 달고 사는 운동권 출신들과는 대비된다. 지난해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시위 이후 그가 툭하면 길거리에 나서는 걸 어색하게 느끼는 사람이 적지 않은 것도 온건한 그의 이미지와 잘 맞지 않기 때문이다.

정 대표가 미디어법 통과와 관련해 이명박 정권이 “의회 민주주의를 유린했다”고 말한 것도 비장하겐 들려도 공감이 가지는 않는다. 외국 언론에서 웃음거리가 된 건 야당 의원들이 보인 활극이지 법 자체가 아니다. 다수결은 민주국가에서 합법적인 표결 방식이다. 야당이 수적으로 열세라고 해서 물리력으로 표결을 막는 걸 민주주의를 위한 것이라고 호도할 수는 없다. 정 대표도 여당 시절엔 그리 생각했을 것이다.

국민이 민주당에 박수를 보내는 건 성실한 의정활동을 펼칠 때다. 천성관 전 검찰총장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민주당이 그의 문제점을 낱낱이 파헤친 것은 온갖 투쟁보다 국민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민주당은 그런 의정활동으로 정부 여당을 꼼짝 못하게 만들어야 한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민주당은 죽을 쒔다. 촛불시위로 날밤을 지새우느라 정작 야당을 위해 멍석을 깔아놓은 국감 준비를 거의 못했기 때문이다. 지금 같아선 올해라고 나아질 것 같지 않다. 민주당이 재집권하려면 여당보다 더 적극적으로 민생을 챙기고, 나라 살림을 감시해야 한다. 그런 게 쌓여야 국민의 신뢰를 얻는다.

일정한 냉각기를 거친 뒤 민주당이 9월 정기국회에 더욱 성숙한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정 대표가 중심을 잡아줬으면 한다. 의원 사직서를 되찾아 찢어 버리고, 합리적 대안을 갖고 제1야당의 실력을 보여주길 기대한다. 휴가를 반납하고 일을 해도 시원찮을 판에 투쟁만 외친다면…. 잘 생각하시길 바란다.

한기흥 정치부장 eligi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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