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리포트]10개월 만에 매장 1000개 ‘아리따움’ 신화

  • 입력 2009년 7월 25일 02시 56분


아모레퍼시픽의 지정판매 체인점 ‘아리따움’. 동아일보 자료 사진
아모레퍼시픽의 지정판매 체인점 ‘아리따움’. 동아일보 자료 사진
화장품 숍 블루오션 ‘동네’에서 찾다
친근한 가게-착한 가격-착한 상담
피부 고민 여성, 친구집처럼 찾아

늘 쓰던 화장품이 다 떨어진 것을 갑자기 깨달았을 땐 동네 화장품 가게가 최고다. 백화점은 물리적, 심리적 거리가 멀다. 동네 화장품 가게라면 집에서 입던 옷 그대로 입고 가도 좋고 가게 주인과 평소 잘 알고 지냈다면 금상첨화다.

하지만 때로는 단점도 있다. 가게 주인이 “(어디 뒀는지 모르니) 제품을 잠시 찾아야 한다”고 말하거나 먼지가 뽀얗게 쌓인 채 구석에 놓인 제품에 눈길이 가면 슬그머니 걱정스러운 마음이 든다. 아모레퍼시픽이 겨냥한 것은 바로 이런 시장이다. 동네 화장품 가게처럼 친숙하면서도 믿을 만한 상품을 파는 가게. 아모레퍼시픽의 브랜드숍 ‘아리따움’은 백화점과 동네 화장품 가게 사이 틈새를 뚫고 들어갔다.

○ “믿을 만한 상품을 믿을 만한 가게에서”

아리따움은 아모레퍼시픽이 제조·유통하는 제품만 파는 브랜드숍이다. ‘아이오페’ ‘라네즈’ ‘한율’ ‘마몽드’ ‘해피바스’ 등 화장품, 목욕용품과 20여 종의 향수가 주요 상품이다. 아리따움은 지난해 9월 1일 1호점을 시작한 후 10개월 만에 ‘10-10클럽’에 안착했다. ‘10-10클럽’은 전국 1000개 이상의 매장 네트워크와 월 매출 1억 원 이상 매장 10개, 5000만 원 이상 매장 100개 이상을 달성했다는 의미로, 프랜차이즈 업계에서 성공의 척도가 되는 말이다.

‘레드오션(포화 시장)’이 된 화장품 브랜드숍 시장에서 단기간에 이 같은 성과를 이뤄낸 비결은 뭘까. 크게 세 가지다. △동네 화장품 가게의 친근함 △아무리 비싸도 20만 원을 넘지 않는 ‘착한 가격’ △믿음직한 상담과 고객관리 등이다. 김희준 아모레퍼시픽 시판부문 팀장은 “믿을 만한 상품을 믿을 만한 가게에서 믿을 만한 사람에게 구입하도록 한다는 것이 전략 포인트”라고 설명했다.

○ 사전 작업만 7년

동네 화장품 가게의 친근함을 얻는 방법 중 하나는 동네 화장품 가게를 아리따움으로 변신시키는 것이었다. 이에 아리따움은 기존 화장품 가게들을 포섭하는 데 역점을 뒀다. ‘더페이스샵’ ‘스킨푸드’ 등 기존 브랜드숍이 새로운 점포를 내는 데 집중한 것과 다르다.

동네 화장품 가게의 특징은 여러 회사 제품을 한꺼번에 판다는 점이다. 아모레퍼시픽은 자사 제품의 점유율을 조금씩 높여가다 궁극적으로 아모레퍼시픽 제품만 파는 가게로 유도했다.

이 과정은 약 7년 동안의 사전 작업이 필요했다. 아리따움의 전신인 ‘휴플레이스’가 징검다리 역할을 했다. ‘우리 편’이 될 가능성 있어 보이는 동네 화장품 가게를 찾아 휴플레이스 간판을 달아주고, 재고관리시스템(POS)을 무료로 도입하는 지원을 시작했다. 그러면서 조금씩 가게 내 아모레퍼시픽의 점유율을 높여갔다. 6년이 지나자 950여 개의 휴플레이스가 생겼다.

○ 점주 찾아 삼고초려

두 번째 단계에 착수할 시기가 왔다. 여러 회사 제품을 파는 휴플레이스를 100% 자사 제품만 판매하는 브랜드숍으로 유도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점주들을 설득해야 했다. 점주들은 “한 회사 제품만 팔다 보면 매출이 떨어진다”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아모레 제품은 아리따움에서만 살 수 있게 하겠다’, ‘아이오페 레티놀NX도 아리따움에서만 살 수 있게 하겠다’고 해도 망설였다. ‘아이오페 레티놀NX’는 ‘설화수 윤조에센스’와 함께 아모레퍼시픽의 양대 대표 상품이다.

“고객과 심리적 거리도 1m로 줄여라”

본보기가 필요했다. 두 군데 가게를 골라 ‘파일럿 매장’으로 삼았다. 서울 은평구 로데오 거리와 경기 평택시 중심가에 있는 가게였다. 다른 회사 제품은 다빼고 아모레퍼시픽 제품만 팔게 했다. 인테리어와 진열방식을 바꾸고 단골 관리에 들어가니 3, 4개월 후 매출이 오히려 10%가량 높아졌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몰 내 휴플레이스 점주는 이민전 시판부문 부사장이 직접 점주의 고향까지 찾아가 설득하기도 했다. 6월 말 기준 950여 개의 휴플레이스 중 800여 개가 아리따움으로 전환했다. 5월 실적 집계 결과 각 매장은 휴플레이스 시절보다 매출이 15% 정도 늘어났다고 보고했다.

○ ‘결정적 1m’의 힘

또 다른 성공 포인트는 가게 직원들을 전문 상담가로 교육시키는 것이었다. 화장품 판매는 상담이 중요하다. 화장품 가게를 찾는 소비자들은 누구나 피부에 한두 개씩 문제를 가지고 있기 때문.

이에 화장품 회사로는 처음으로 파트너 회사를 설립해 전국 판매점에 산재돼 있는 판매사원들을 파트너 회사에 소속시키고 교육하는 한편 4대 보험과 퇴직금 등의 근무조건을 제시했다. 이 과정도 쉽지만은 않았다. 김회준 시판전략팀장은 “매장 정보와 노하우를 빼내려고 하는 것 아니냐, 직원들을 다 빼내 직영으로 가려는 것 아니냐며 반발하는 점주가 많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규 교육과 역량 강화는 신규 고객 수 증가, 고정 고객 확대로 이어졌다.

7월 중순 현재 아리따움 지점 수는 총 1018개다. 올해 말에는 1200여 개까지 무난히 확대할 것으로 전망한다. 이민전 부사장은 “승패를 구별 짓는 것은 고객과의 거리 1m”라며 “집에서부터의 거리 이외에도 심리적 거리를 좁힐 수 있는 다양한 서비스를 얼마나 많이 제공하느냐가 중요하다”고 귀띔했다.

김현지 기자 nuk@donga.com

21번째 설득… ‘신뢰’에 마음 열었다

■ 서울 코엑스몰 점주 ‘아리따움’ 간판 걸기까지

“매출요? 지금 ‘아리따움’으로 전환하면 당연히 떨어지겠죠.”

“매출이 당연히 떨어진다면서 어떻게 아모레퍼시픽 것만 팔라고 해요?”

‘아리따움’ 출범을 3개월여 앞둔 지난해 6월, 이민전 아모레퍼시픽 시판부문 부사장은 경기 화성시의 한 원두막에 앉아 있었다. 맞은편에 앉은 사람은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몰에서 화장품 가게를 열고 있는 점주. 이 점주는 당시 ‘휴플레이스’라는 간판 아래 아모레퍼시픽 이외에도 LG생활건강, 가네보, 고세 등 여러 회사의 제품을 팔았다. 이 부사장은 타사 제품을 모두 치우고 아모레퍼시픽 제품만 100% 파는 ‘아리따움’으로 전환하도록 권유하고 있었다.

이미 스무 번이나 아모레퍼시픽 실무진의 설명을 들었지만 코엑스몰 점주는 여전히 망설였다. 게다가 회사 부사장이 화성까지 쫓아와 고작 하는 말이 “매출은 당연히 떨어진다”라니. 그들 주위에 점주 부인과 동생, 동네 사람들도 슬금슬금 모여들기 시작했다.

“제가 ‘매출 안 떨어진다’고 하면 그건 거짓말이겠죠. 아리따움에 들어가는 제품은 가격도 싸고 품목도 적으니까요.” 이 부사장은 조금씩 말문을 열었다. “하지만 핵심은 얼마나 빠르게 회복할 건가이겠죠. 비결은 판매 직원에게 있어요. 결국 화장품 가게의 승패는 아주 작은 부분에 있으니까요. 판매 직원 중 정예 멤버를 그 가게에 투입해 드릴게요. 단기간에 떨어진 매출을 회복할 수 있을 겁니다.”

점주의 표정이 조금씩 풀려갔다. 이 부사장은 “그 매장을 제 매장이라고 생각하고 관리하겠다”고 약속하면서 “저를 믿으시면 저희와 함께하시고, 못 믿으시면 안 하셔도 됩니다”라고 했다. 점주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소주만 마셨다. 그리고 그 다음 날 ‘아리따움’ 전환에 도장을 찍었다. 5월 기준 코엑스몰 아리따움의 매출은 1억5000여만 원으로, 휴플레이스 시절 1억 원에 비해 크게 늘었다.

이 부사장은 “처음부터 잘될 거라고 말하는 건 무책임하다. 비즈니스에선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는 솔직함이 가장 필요하고, 거기서 신뢰도 나온다”며 “내가 그 사람 처지가 됐을 때 그 사람을 돈 벌게 해줄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모습이 신뢰를 얻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김현지 기자 nu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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