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재난영화’ 실감나게 덮친다

  • 입력 2009년 7월 21일 02시 57분


영화 ‘해운대’는 130억 원의 제작비를 들인 재난 영화지만 다양한 웃음 코드를 곳곳에 배치했다. 지진해일이 부산 해운대를 휩쓰는 장면은 영화 ‘퍼펙트 스톰’ 등의 특수효과를 맡았던 한스 울리크가 맡았다. 사진 제공 영화인
영화 ‘해운대’는 130억 원의 제작비를 들인 재난 영화지만 다양한 웃음 코드를 곳곳에 배치했다. 지진해일이 부산 해운대를 휩쓰는 장면은 영화 ‘퍼펙트 스톰’ 등의 특수효과를 맡았던 한스 울리크가 맡았다. 사진 제공 영화인
■ 베일벗는 윤제균감독 ‘해운대’

광안대교 붕괴 등 지진해일CG 관객 압도
완벽한 부산사투리 등 감초연기도 재미

감독 윤제균(40)은 이런 사람이다. 데뷔작이었던 ‘조폭’ 코미디 ‘두사부일체’(2001년)가 350만 명, 섹스 코미디를 내세운 ‘색즉시공’(2002년) 420만 명, 철거 예정 달동네로 간 조폭의 좌충우돌을 그린 ‘1번가의 기적’(2007년)이 255만 명…. 비교적 저조했던 ‘낭만자객’과 ‘색즉시공2’까지 합치면 그가 영화로 모은 관객은 모두 1000만 명이 넘는다.

하지만 이런 흥행 성과에 비해 평단의 반응은 매번 싸늘했다. 때리고 욕하고 망가지며 우스워지다 끝내 울리고 마는 그의 영화는 ‘쌈마이’(삼류의 은어)의 하나로 평가받았다. 그런 감독이 지진해일을 다룬 재난 블록버스터 영화를 만든다니…. 영화 ‘해운대’는 ‘장기’에 안주하기보다 낯선 장르에 도전한 윤 감독의 ‘객기’로 보였다.

23일 개봉하는 ‘해운대’는 그가 세 편의 영화를 통해 검증받은 흥행 공식을 고스란히 블록버스터 버전에 대입한 영화다. 그 결과 영화는 몸집도 커졌지만 맷집도 세졌다. 예전 영화에서 무리하다 싶었던 황당한 유머와 설정이 더욱 탄탄하게 다듬어졌다.


▲박태근 기자

영화는 해운대 상가번영회 회장 최만식(설경구)과 무허가 횟집을 운영하는 강연희(하지원)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2004년 인도양으로 나간 연희 아버지는 지진해일로 죽고, 함께 배를 탔던 만식은 죄책감에 연희를 보살핀다. 여기에 만식의 동생이자 해양구조대 구조대원 형식(이민기)과 해운대에 놀러온 철없는 삼수생 희미(강예원), 해운대에서 재회한 지질학자 김휘(박중훈)와 그의 전처 이유진(엄정화)의 에피소드가 얽히고설켜 있다. 연희의 동창이자 날건달인 오동춘(김인권)과 만식의 귀여운 아들의 감초연기도 빼놓을 수 없다.

지진해일이 해운대에 몰려오기 전까지 이 영화를 정리해보면 ‘색즉시공’과 ‘두사부일체’가 가미된 ‘1번가의 기적’이다. 그물망처럼 짜여진 여러 에피소드 속에 윤 감독은 전작들을 통해 구사한 웃음 코드를 다양하게 버무렸다.

여기에는 ‘화장실 유머’라 불리는 저차원적인 유머(만취한 만식이 위장약 대신 1회용 샴푸를 먹어 입에 거품을 물거나 야구장에서 4번 타자에게 야유를 보내는 장면)도 있고 소박하지만 뭉클한 유머(이마를 때려서 아이의 이를 뽑거나, 아들의 우스꽝스러운 앵벌이 장면)도 있다. 지나치게 많은 에피소드들이 조각조각 이어지다 보니 불필요하거나 튀는 장면도 더러 있지만 생생한 부산 사투리를 구사하는 배우들의 호연으로 설득력을 얻었다. 그리고 변함없이 마지막은 코끝 찡하게 만드는 눈물이다.

미리 밝혀두자면, 본격적인 지진해일 컴퓨터그래픽(CG)은 끝나기 30분쯤 전부터 나타난다(영화의 러닝타임은 120분이다). 그러나 실망하진 말 것. ‘퍼펙트스톰’ ‘투모로우’의 CG 제작자 한스 울리크를 섭외해 제작비의 절반을 들였다는 CG는 현장감을 관객들에게 가득 안긴다. 불길한 징조로 갈매기가 차 유리에 부리를 박거나, 쑥대밭이 된 해운대 주변의 건물이 너덜너덜해진 장면, 광안대교에 컨테이너 선박이 떨어지는 장면은 한국 영화의 기술적 성취로 볼 수 있을 듯하다.

한마디로 이 영화는 130억 원을 투입한 작품답다. 웃기다가 울리고, 울리다가 웃긴다. 모든 게 휩쓸려간 뒤에도 살아남은 사람들의 유머는 멈추지 않고, 지진해일처럼 엄청난 물량공세로 시각을 압도한다. 다만 아쉬운 점은 김휘 박사가 엄청난 지진해일을 뒤로하며 딸을 향해 “내가 니 아빠다”라며 마지막으로 내뱉는 한마디. 이 장면은 관객을 울리려다 가장 웃기는 대목이 돼 버렸다. 12세 관람가.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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