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님과 친구됐어요]넉달 간 쏟아진 ‘5만원의 사랑’…

  • 입력 2009년 7월 17일 02시 56분


'2009 희망찾기' 캠페인을 통해 변호사와 일대일 자매결연을 맺게 된 중학생 홍모 군의 어머니가 변호사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은 편지와 함께 휴대전화 고리를 선물로 보내왔다.
'2009 희망찾기' 캠페인을 통해 변호사와 일대일 자매결연을 맺게 된 중학생 홍모 군의 어머니가 변호사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은 편지와 함께 휴대전화 고리를 선물로 보내왔다.
1245개 희망씨앗 심어

형편 어려운 청소년에 매달 급식비 등 후원… 삶의 조언자 역할도

서울 성동구의 모 중학교 1학년인 희선이(가명·14)는 2002년부터 몽골인 아빠 엄마와 함께 서울에서 살고 있다. 이삿짐센터에서 일하는 아빠는 틈나는 대로 건설현장에서 막노동까지 하지만 월수입은 100만 원 안팎. 식당 일을 하던 엄마는 올해 3월 동생을 낳는 바람에 일을 그만둬야 했다.

중학교에 들어간 뒤부터 희선이는 급식비를 내야 하는 월말이면 선생님의 눈치를 보곤 했다. 몇 달째 밀린 급식비에 대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고민스러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으로는 그런 걱정을 덜게 됐다. 얼굴도 모르는 한 변호사가 앞으로 2년 동안 희선이를 위해 급식비와 학교 운영비 명목으로 매달 5만 원씩 내기로 한 것이다.

희선이는 패션모델이 되는 게 꿈이다. 희선이는 최근 ‘비록 패션모델이 되지 못하더라도 변호사님처럼 남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이 되도록 공부 열심히 할게요’라는 감사 편지를 써서 서울지방변호사회 앞으로 보내왔다.

5만 원이란 돈의 가치는 일반인에게 그다지 크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희선이네처럼 저소득층 가족에게는 5만 원이 절망과 희망을 가르기도 한다. 동아일보와 서울지방변호사회, 서울시교육청은 저소득층 자녀에게 매달 ‘5만 원의 사랑’을 전하는 ‘2009 함께하는 희망 찾기―변호사님과 친구 됐어요’ 캠페인을 올해 2월 말부터 시작했다. 그로부터 4개월여 만인 7월 16일, 학생들에게 희망의 메신저가 되겠다며 캠페인에 참여한 변호사가 1000명을 넘어섰다. 변호사와 저소득층 자녀를 일대일로 맺어주는 이번 캠페인에는 16일 현재 1002명의 변호사가 1245명의 학생을 후원하는 데 참여했다. 1002명의 변호사는 1차 약정기간인 2년 동안 모두 14억9400만 원을 지원하게 된다. 참여 변호사들은 결연 학생에게 매월 일정한 금액을 후원하는 것은 물론이고 필요할 때마다 멘터(조언자) 역할도 맡는다.

○ “변호사회 가장 성공한 후원 사업”

서울변호사회는 1999년부터 소년소녀 가장 및 재감자 자녀 돕기 장학사업을 벌여왔다. 올해 2월 새로 출범한 서울변호사회 집행부는 이러한 사회공헌 활동만으로는 법조인에 대한 국민의 곱지 않은 시선을 바꿀 수 없다고 판단했다. 김현 회장은 회원 변호사 전원이 연간 5회의 무료변론을 하고 소득의 1%를 기부하는 운동을 벌이는 등 사회공헌을 확대하는 공약을 내세웠고 다수의 변호사가 동참 의사를 밝혔다. 이는 사회적 약자를 돕기 위해 동아일보가 펴고 있는 연중 캠페인 ‘2009 함께하는 희망 찾기’의 취지와 맞아떨어졌다. 양측은 곧바로 서울시교육청과 공식 업무협약을 맺고 본격적인 캠페인에 나섰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기준)’를 실천하자는 이번 캠페인에 대한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한 달 만에 후원약정 금액이 10억 원을 넘어섰고, 두 달 만에 후원 계좌 수가 1000개에 이르렀다. 서울변호사회 최행락 총무팀장은 “10년째 이어진 서울변호사회의 소년소녀가장 돕기 사업 참여 변호사가 340명인 점을 감안하면 이번 캠페인은 변호사 단체가 추진한 역대 사회공헌 활동 중 가장 성공적”이라고 평가했다.

○ ‘사각지대’ 저소득층 자녀 지원

서울 관악구에 사는 유민이(가명·15·중2)는 중학교에 들어간 후 반에서 1등을 한 번도 놓치지 않았다. 성격도 원만하고 운동도 잘해 친구들한테 인기도 높다. 이 때문에 유민이는 늘 반장 후보에 올랐지만 집안 형편 때문에 번번이 스스로 반장을 맡기를 피했다.

유민이의 아버지는 의류 무역업을 하다 경기침체 여파로 몇 년 전 부도를 맞았다. 한동안 술로 허송세월을 했지만 듬직한 유민이를 보며 마음을 바꿨다. 지금은 택시 운전을 하며 성실히 생활하지만 월소득은 100만 원가량으로 늘 빠듯하다. 이번 캠페인으로 후원을 받게 된 유민이는 후원 변호사의 격려 전화를 받고 들떠 잠을 못 이룰 정도였다. 유민이는 “어려서 본 드라마 속에서 가난한 사람 편에 선 변호사가 너무 멋져 보였다”며 “그런 변호사 아저씨가 나에게 공부 열심히 하라고 말하는데 가슴이 너무 뛰었다”고 말했다.

이번 캠페인이 알려지면서 동아일보 고객센터 등에는 도움을 받고자 하는 안타까운 사연이 여러 건 접수됐다. 그러나 지원자 선정의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 서울시교육청이 대상 학생을 직접 선정하고 있어 일일이 도움을 줄 수 없었다. 서울시교육청은 이미 정부로부터 급식비 등을 지원받고 있는 기초생활수급자 자녀보다는 후원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차상위계층 자녀들을 중심으로 대상 학생을 선별했다.

이종식 기자 bel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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