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윤재]영어 문법교육은 존폐 아닌 시기의 문제

  • 입력 2009년 7월 17일 02시 55분


태평양전쟁에서 승리한 미국은 일본을 어떻게 처리할지를 놓고 온갖 시나리오를 검토했다. 일본을 완전히 해체하여 미국의 52번째 주로 만들자는 안이 포함됐다. 일본어에 능통한 미국인이 최소한 50만 명 필요했다. 당시 미국으로선 현실적으로 그만한 인력을 확보하기란 불가능했다. 결국 이 방안은 폐기됐다. 의사소통의 중요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국내 영어교육 전반에 대해 구체적이고 심층적인 고찰이 필요하다. 과거 영어교육의 최대 문제점은 초등학교 시절에 구어(듣기 말하기) 교육이 없었다는 점이다. 지금은 3학년부터 시행하지만 가능한 한 1학년부터 실시해야 한다. 우리는 독해만 해오다가 사회 진출을 목전에 두고 듣기 말하기 쓰기 공부를 했다. 이제는 순서를 바꿔 초등학교에서는 듣기와 말하기에 중점을 두어 귀를 트이게 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국내 영어교육이 잘못된 것은 문법 공부에만 치중했기 때문이라고 흔히들 말한다. 일면 맞는 진단이면서 일면 틀린 진단이다. 영문법을 폐기하라는 내용의 칼럼이 신문에 실린다면 수없는 찬성 댓글이 달릴 것이다. 영문법은 과연 유통기한이 지나서 폐기 처분해야 할 대상인가?

처칠은 그의 저서 ‘제2차 세계대전’으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문장가이다. 전치사로 끝낸 처칠의 문장이 부적절하게 보였던지 편집자가 원문에 손을 댔다. 처칠은 편집자에게 “이것은 내가 결코 참지 못하는 주제 넘는 짓이다(This is the kind of impertinence up with which I shall not put)”라는 메모를 보냈다. put up with는 관용구이므로 분리시키는 것이 좋지 않지만 전치사가 문장 끝에 오는 것은 언제나 눈에 거슬린다는 원칙을 무조건 고수함으로써 생길 수 있는 어색함을 실례를 들어 설명하고자 했다.

문법을 모르고 고급영어를 욕심내는 것은 실패를 준비하는 격이다. 문법은 독해나 작문과 동일선상의 개념이 아니다. 문법은 독해와 작문을 위한 수단이다. 미국에서는 우리의 ‘국어’에 해당하는 과목을 ‘language arts’라고 한다. 이 과목에서는 에세이를 자연스럽게 쓸 때까지 필요한 문법을 반복 학습시킨다. 중요한 점은 언제부터, 어떤 방법으로 문법을 가르쳐야 하느냐는 사실이다. 문법은 문리(文理)가 터지는 중학교부터 손대야 한다. 초등학교에서는 구어 중심 교육을 하다가 중학교부터는 문어 중심 교육으로 이동시킨 후 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는 문어교육 위주로 따지는 학습을 해야 한다.

이윤재 영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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