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계 기업 “똑똑한 한국인재, 궂은일 도전정신은 2% 부족”

  • 입력 2009년 7월 6일 02시 57분


■ 한국투자 매력은
22% “지리적 이점” 꼽아
한국 내수시장 가능성 커
17% “점유율 확대” 기대

■ 한국투자 걸림돌은
50% “과도한 규제” 지적
금융위기로 파업 줄어
“강경노조” 거론은 8%

외국계 기업들은 어떤 이유 때문에 투자를 하고, 또 무슨 이유로 투자를 포기하는 것일까. 투자대상국으로서 한국의 매력은 무엇이고, 결점은 무엇인지 외국계 기업들의 의견을 직접 들어봤다.

매력적 코리아

세계 최대 실리콘 생산업체인 다우코닝 내부에서는 지난해 하반기(7∼12월) 해외지사 간 불꽃 튀는 경쟁이 벌어졌다. 이 회사가 해외에 처음으로 짓는 ‘태양광 솔루션 응용기술센터’를 한국 일본 중국 싱가포르 지사가 서로 유치하려고 총력전을 벌인 것. 일본 지사는 높은 기술력을, 중국은 낮은 인건비와 시장 성장 가능성, 싱가포르 지사는 세금 감면과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앞세웠다. 실제로 싱가포르의 경우 정부 대표단이 미국 다우코닝 본사를 방문해 유치 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다우코닝 본사가 태양광 솔루션 응용기술센터를 만들기로 한 곳은 한국이었다. 조달호 한국다우코닝 사장은 “한국의 우수 인재와 태양광 시장 성장세, 충북 진천공장의 효율성 등 3가지를 본사에서 가장 높게 평가했다”고 말했다.

○ 인재가 한국의 핵심가치

외국계 기업들이 투자대상지로 한국을 결정할 때 가장 크게 매력을 느끼는 점이 ‘우수한 인재’라는 사실은 외국계 기업 60개사를 대상으로 한 본보와 지식경제부의 공동설문조사 결과에서도 여실히 나타난다. ‘한국에 투자하는 핵심 이유’(복수 응답)로 ‘우수한 인적 자원’(48%)이라는 응답이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한 것.

미국계 다국적 제약사인 얀센실락(얀센)과 다국적 타이어기업 브리지스톤의 사례는 이런 조사 결과를 구체적으로 뒷받침한다. 얀센은 세계 20곳에 공장이 있지만 한국얀센 공장이 생산성 1위다. 한국의 제품 단위당 생산비를 1이라고 할 때 중국 1.31, 일본 1.58, 남미 4.30이다. 김도경 한국얀센 이사는 “직원들이 연평균 360건의 아이디어를 내면서 효율을 높이자 자연스럽게 생산성 1위 공장이 됐다”고 말했다.

브리지스톤의 한국지사인 브리지스톤 타이어세일즈코리아는 연간 3, 4개 해외 지사의 방문을 받는다. 이번 주에는 베트남 지사 사원들이 방문해 한국 시스템을 배워갈 예정이다. 회사 측은 “한국 직원들은 열정과 책임감이 높고 일처리가 빨라 항상 목표를 초과 달성한다”며 “덕분에 한국지사는 아시아의 대표 모델이 됐다”고 말했다.

한 수입차 업체 임원은 “훈련기간이 짧아도 바로 현장에 투입할 수 있다는 점이 한국 인력의 장점”이라며 “최근 채용한 인턴사원의 학습능력이 뛰어나 대부분 정규직으로 전환했다”고 말했다.

○ IT 인프라도 강점

이번 조사에서 ‘한국에 투자하는 핵심 이유’로 ‘우수한 인적 자원’에 이어 많이 나온 응답은 뛰어난 정보기술(IT) 인프라(38%)였다. 한 예로 미국 보잉이 2대 주주인 방위산업체 휴니드테크놀로지는 최근 120억 원 규모의 모의실험(M&S)센터를 한국에 설립한다고 밝혔다. 미국 영국 호주에 이어 세계에서 4번째다. 휴니드테크놀로지 측은 “훌륭한 IT 인프라와 한국 국방시장의 성장 가능성이 모의실험센터를 유치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전자부품과 자동차 소재 등을 만드는 다국적 기업 듀폰은 ‘한국 기업들의 경쟁력’을 가장 높이 평가했다. 임정택 듀폰 재무 및 기획담당 전무는 “삼성 LG 현대·기아자동차 SK 등 글로벌 리더 기업들이 있기 때문에 미국 본사 차원에서 당연히 한국에 진출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아쉬운 코리아

외국계 기업들은 한국의 투자매력으로 우수한 인적자원을 꼽으면서도 “필요한 인재를 구하지 못해 제대로 투자를 할 수 없다”는 불만을 동시에 토로했다.

○ 우수한 인재…2% 부족

글로벌 특송회사 UPS코리아는 지난달 ‘마케팅 부서 사무직 7개월 근무자 구함’이라는 공고를 냈다. 심각한 청년실업을 생각하면 구직자는 쉽게 몰릴 듯했다. 하지만 구직자 3명을 모으는 데만 한 달이 걸렸다. 송태호 UPS코리아 부장은 “한국시장에는 훌륭한 인재가 넘치지만 인재 대부분이 단기간 근무직이나 단순 사무직엔 지원하지 않아 아쉽다”며 “젊은 구직자들이 인턴이나 단기간 근무직에 도전하면 외국계 회사들도 적극적으로 채용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외국계 기업은 인턴이나 비인기 부서의 허드렛일로 시작하는 직원에게도 기회의 문을 열어놓고 있다는 얘기다. 실제 송 부장은 미국 유학생활 도중 1년간 인턴사원으로 일하다가 정식 직원으로 채용됐다. 그의 능력을 알아본 미국 본사는 송 부장을 2007년 한국지사 기획담당 차장 자리에 앉혔다.

한국 인재들의 지나친 국수주의는 외국계 기업에 프로답지 못하다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5년 전 한 외국계 기계부품업체에서는 한국인 경력직원을 들였다가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이 직원에게 국내 경쟁사에 대한 정보 수집을 맡기자 “난 산업 스파이가 아니다”라며 반발했다는 것. 헤드헌팅 업계 관계자는 “국내 기업이 기업전략이나 마케팅 기법으로 흔히 하는 일을 외국계 기업에서 하면 거부감을 느끼는 직원들이 있다”며 “넓은 시야와 프로의식을 갖고 업무에 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한국 인재의 잠재력을 제대로 다듬지 못하는 대학교육도 문제였다. 조병렬 GE코리아 상무는 “인력은 똑똑하지만 대학교육은 기업이 기대하는 실무교육, 기본조건을 갖추고 있지 못한 편”이라고 지적했다.

○ “규제완화, 아직 목마르다”

외국계 기업에 한국의 규제는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숙제다. 외국 투자기업은 ‘한국 투자를 막는 걸림돌’(복수 응답)을 묻는 질문에 ‘과도한 규제’(50%)와 ‘과도한 세금’(43%)을 가장 많이 꼽았다.

규제를 견디지 못해 외국으로 투자 방향을 돌리는 외국계 기업도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한국에 투자한 한 스웨덴계 자동차부품 생산업체는 2004년부터 2007년까지 한국에 투자할 자금 상당 부분을 중국으로 돌렸다. 수도권 규제로 설비 증설 및 신설이 어려웠기 때문.

국내 한 외국계 은행의 마케팅 담당 임원은 지난해 말 해외 본사에 ‘중소기업에 대한 의무대출 비율 현황’을 보고하며 곤욕을 치렀다고 털어놨다. 당시 한국 정부는 유동성 위기를 겪는 중소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중소기업 대출 의무비율을 시중은행은 45%, 지방은행은 60%로 정했기 때문. 본사는 “왜 정부가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 비율까지 결정해 은행의 여신 자율권을 침해하느냐”고 항의했다.

강호상 서강대 경영학부 교수는 “외국인 투자 유치를 위해 수도권 규제 완화 등 각종 유인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하지만 중소기업 의무대출 비율 완화 등은 국내 산업 보호 측면에서 신중히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조은아 기자 achim@donga.com

박형준 기자 love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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