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크엔드 카페]‘취준생’ 떨게 만든 삼국지 영어 면접

  • 입력 2009년 7월 3일 03시 00분


《취업을 앞둔 이른바 ‘취준생(취업 준비생의 준말)’인 친구로부터 얼마 전 들은 이야기다. 이야기는 누구나 들어가고파 하는 국내 한 대기업 인턴 면접장에서 시작한다. 침 넘어가는 소리까지 들릴 것 같았단다. 영어 토론 면접을 10여 분 앞두고 대기장은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해 있었다. 그러던 중 갑자기 인사 담당자가 하는 말, “자, 6명이 한 조를 짜서 ‘유비’ ‘관우’ ‘장비’ ‘조조’ ‘조자룡’ ‘제갈공명’ 중 한 명을 고르세요.”》

아니 이게 웬 ‘생뚱’맞은 주문인가. 그때까지만 해도 지원자들은 이젠 너무 많이 봐서 닳아 버린 공책 속 미리 써 온 영어 문장을 외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삼국지? 의아해하면서 쭈뼛쭈뼛 캐릭터를 고른 그들에게 이어 주어진 종이 한 장. 그 속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여러분은 모두 각 부서 팀장입니다. 그리고 방금 고른 삼국지 속 인물은 당신 팀 일원입니다. 우리 회사가 심각한 위기 상황에 봉착했다는 전제조건하에 각자 그 팀원을 해결사로 추천하면 됩니다. 주어진 시간 내에 결론을 내지 못하면 팀원 모두 감점됩니다. 단 영어로만 말하세요.’

문제를 낸 사람은 천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4가지 능력을 파악할 수 있는 문제였다. 삼국지를 읽었는지 아닌지 보는 동시에 영어, 토론 능력에 발 빠른 결단력까지!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훌륭한 질문에 따른 토론은 형편없었다. 다들 너무 뻔한 논리만 앞세운 탓에, ‘유비 이즈 나이스’, ‘장비 이즈 터프’ 수준의 대화만 오갔던 것. 결국 마음이 급해진 지원자들은 가장 지략가란 이유로 조조를 뽑았다.

올해 면접만 열 번 가까이 본 친구는 면접을 끝낼 때마다 제대로 대답하지 못한 자신에게만큼이나 학교에도 화가 난다고 했다. 4년 넘게 다닌 대학에선 제대로 된 토론 한 번 해 본 적이 없는데 요즘 입사 과정에선 토론은 기초 능력이다. 영어는 더 심각하다. ‘기업 영어’다, ‘비즈니스 영어’다 입사를 위한 각종 영어 강좌부터 일주일간 떠나는 ‘영어 취업 캠프’까지 있지만 모두 암기식 토익 영어라 실제 현장에선 전혀 활용하지 못했다는 게 친구의 한탄이었다. 아마 이 글을 보면 같이 한탄할 취준생들이 더 많을지도 모르겠다.

김지현 산업부 기자 jhk8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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