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심으로 산다” 옛말…이젠 더운밥도 ‘찬밥신세’

  • 입력 2009년 7월 2일 14시 13분


'밥'은 우리에게 그토록 소중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우리의 관심권에서 멀어져가고 있다. 소득수준 향상과 식생활의 서구화, 다이어트 열풍 속에서 밥은 이제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

2일 통계청에 따르면 작년 국내 1인당 쌀 연간 소비량은 75.6㎏으로 2007년에 비해 1.3㎏ 줄었다. 2001년 88.7㎏에 비해선 14.5%(12.9㎏)나 감소했다. 1인당 하루 밥 두 공기에서 1.7공기만 먹는 셈이다. 지금 추세라면 대만(48.0㎏), 일본(61.0㎏)의 초저 소비수준까지 내려갈지도 모를 일이다.

쌀 소비가 주는 것은 밥 그릇 크기만 봐도 알 수 있다. 행남자기 제품연구소에 따르면 '밥이 보약'이던 1940~1950년대 밥 그릇 용량은 530cc이었다. 서구 식문화가 국내에 소개되면서 밥그릇 크기는 1960년대 500cc, 1970~1980년대에는 450cc로 줄었다. 1970년대 1인당 쌀 연간 소비량은 136.4㎏에 달했다. 하지만 1988년 서울올림픽을 전후로 맥도날드를 선두로 다국적 패스트푸드가 국내에 소개되면서 한국인들의 밥심은 계속 줄어들었다. 1990년대 자기업계에서 통용되는 밥그릇 크기는 지름 10.5㎝, 높이 6㎝의 용량 350cc다.

밥심이 줄다보니 최근 싱글족(族)사이에서 인기있는 즉석밥 가운데 용량을 줄인 제품도 출시됐다. CJ제일제당은 즉석밥 '햇반'의 원래 용량 210g보다 80g 줄인 130g짜리 미니 햇반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다이어트에 관심이 많은 여성들 가운데서는 기존 햇반 용량도 너무 많다는 의견이 있어 미니 햇반을 내놓았다"고 설명했다.

가정용 뿐 아니라 식당에서 많이 쓰이는 스테인리스 스틸 밥공기 크기도 예전보다 줄어들었다. 과거에는 식당에서 뚜껑 없이 높이가 높은 입주발을 주로 사용했으나 요즘은 뚜껑이 있는 납작한 합주발을 사용한다. 합주발의 크기는 지름 10.4cm, 높이 4.5cm로 입주발(지름 10cm, 높이 5.6cm)보다 작다. 남대문의 한 그릇도매업체 관계자는 "합주발이 보온 저장이 쉽다는 면도 있지만 그보다 식당 고객들이 먹는 양이 줄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쌀 소비는 줄고 재고가 쌓이니 쌀값도 내림세다. 농수산물유통공사에 따르면 쌀 도매가격(상품·20㎏)은 1일 현재 3만9000원으로 1년 전 비해 5.6%(2300원) 하락했다. 소매가격도 4만4596원으로 한달 전보다 2.6%(1196원) 내렸다. 농수산물유통공사 관계자는 "지난해 쌀 농사가 풍작을 거두다보니 산지(産地)에서는 지난해 벼 매입가격(40㎏당 5만4250원)보다 현재 판매가격(5만~5만1000원)이 더 낮다"며 "비수확기 쌀값이 전년 수확기보다 떨어지는 '역계절 진폭'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정효진 기자 wiseweb@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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