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장환수]스포츠의 힘

  • 입력 2009년 7월 2일 02시 59분


“이러다 남북관계가 악화되는 것 아니야?”

축구 경기 보면서 나온 말치고는 너무 거창했다. 하지만 사실이 그랬다. 지난달 17일 열린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 한국은 후반 35분까지 이란에 0-1로 끌려갔다. 이대로 끝난다면 북한은 몇 시간 후 열리는 최종전에서 사우디아라비아를 이기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한국은 홈경기였지만 북한은 방문경기라 큰 부담이 됐다.

이때 기적이 일어났다. 심장에 ‘산소탱크’가 달려 있다는 박지성이 후반 36분 이근호의 리턴패스를 받아 극적인 동점골을 성공시켰다. 이제 북한은 비겨도 되는 유리한 상황. 결국 북한은 사우디와 0-0으로 비겨 44년 만에 월드컵 본선에 올랐고 사상 첫 남북 동반 진출의 역사가 만들어졌다. 만약 한국이 지고 북한은 비겨 북한이 조 3위로 밀려났다면…. 이를 두고 본보 황호택 논설실장은 지난달 29일자 칼럼에서 박지성의 골이 북한의 후계체제 구축을 간접적으로 도왔다고 썼다.

그러고 보면 스포츠가 뜻밖에도 복잡한 세상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사실에 새삼 눈길이 간다. ‘죽의 장막’을 걷어낸 것은 1971년 중국을 방문한 미국 탁구 선수들이었다. 그 유명한 핑퐁외교다.

국내에선 유신시대에 박정희 전 대통령의 성을 딴 박스컵 축구대회가 있었다. 프로야구와 프로축구는 서슬 퍼런 5공 때 탄생했다. 대구공고 시절 축구 선수로도 뛰었다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불같은 추진력이 만들어낸 작품이다. 지역 연고를 바탕으로 출범과 동시에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프로야구는 탄생 비화 때문에 우민화 정책의 대표적인 사례로 지적되기도 했다.

1986년 서울 아시아경기와 1988년 서울 올림픽 유치도 5공이 이뤄낸 업적이다. 당시 많은 사람은 어려운 경제 상황에 비춰 시기상조라고 걱정했지만 두 대회는 고용 창출과 한국의 대외신인도 제고에 크게 기여했다.

이후 군인이 아닌 분이 대통령이 된 뒤에도 높은 분들치고 한 번쯤 경기장을 찾지 않은 경우가 드물었다. 최근에는 프로 종목의 올스타전을 유치하거나 시구를 하고 싶다는 지방자치단체장의 청탁이 줄을 잇고 있다. 체육단체장이나 경기단체장은 힘깨나 쓴다는 유력 인사의 전유물이 됐다.

정몽준 전 대한축구협회장이 2002년 한일 월드컵 유치와 한국의 4강 신화를 앞세워 한때 유력한 대선 후보로 급부상한 것은 스포츠의 힘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당선되기 전 동대문야구장을 가끔 찾았다. 월드컵 때는 붉은 악마 유니폼을 입고 거리 응원에 동참하기도 했다.

미국 대통령 중에도 스포츠 마니아가 많다. 백악관 집무실에서 퍼트 연습을 했다는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한국 프로골퍼 박지은과 라운드를 하는 게 소원이었다고 한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메이저리그 텍사스 레인저스 구단주였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농구를 했고 미식축구와 미국프로농구 우승팀의 승패를 예언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명박 대통령도 테니스를 즐기고 수영협회장을 맡는 등 스포츠에 깊은 애정을 갖고 있다고 들었다. 그렇다면 박지성의 동점 골만 예를 들어도 국민 건강과 여가를 책임지는 체육 본연의 역할은 거론할 필요조차 없지 않을까. 아직도 나라 전체 예산의 0.23%에 불과한 한국 체육의 거꾸로 가는 시계를 바로 돌려주기를 기대한다.

장환수 스포츠레저부장 zangpab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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