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몸짓에 전통 - 현대가 따로 있나요”

  • 입력 2009년 3월 5일 02시 58분


‘소리는 호남, 춤은 영남’이란 말이 있다고 한다. 그 영남춤의 종손이라 불리는 하용부의 춤은 한 호흡의 숨고르기를 통해 신명의 끈을 조이고 늦추면서 즉흥적인 흥을 끌어내기로 유명하다. 북춤을 추는 그의 손끝과 발끝에서 한국적 흥취가 아지랑이처럼 피어난다. 이훈구 기자
‘소리는 호남, 춤은 영남’이란 말이 있다고 한다. 그 영남춤의 종손이라 불리는 하용부의 춤은 한 호흡의 숨고르기를 통해 신명의 끈을 조이고 늦추면서 즉흥적인 흥을 끌어내기로 유명하다. 북춤을 추는 그의 손끝과 발끝에서 한국적 흥취가 아지랑이처럼 피어난다. 이훈구 기자
《#1 경남 밀양에서 태어난 다섯 살 소년은 할배의 춤사위에 반했다. 밀양백중놀이 때 엇박자로 북을 두드리며 호방하게 펼쳐내는 밀양북춤이 흥겨웠고 솟구치는 신명을 몸속에 가둬두고 어깻짓과 발끝으로 살살 풀어내는 양반춤에 매료됐다. 부자(父子) 사이에 반말이 오가는 한 춤판에 노는 게 남세스럽다며 아비에게 춤을 가르치지 않았던 할배는 손자의 몸짓이 귀엽다며 무동을 태우고 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 할배가 1980년 인간문화재(중요무형문화재 제68호 밀양백중놀이 예능보유자)로 지정된 하보경 옹(1997년 별세)이었다.

#2 할아버지를 따라다니며 전국의 재인을 만난 소년은 춤에만 눈을 뜬 것이 아니었다. ‘호남은 소리, 영남은 춤’이란 말도 배웠고 고수의 장단에 춤판이 그때그때 달라질 수 있음을 깨쳤다. 고졸 학력이 전부였지만 “춤은 같다”라는 생각에 발레 공연장도 기웃거리고 현대무용가와도 어울렸다. 1989년 연극연출가 이윤택 씨를 만나 의기투합해 연희단거리패에 들어가 한국적 몸짓을 연극에 접목시키는 데 골몰했다. 안무는 물론 연기까지 펼쳤다. 강부자 씨가 주연을 맡은 ‘오구’와 손숙 씨가 주연을 맡은 ‘어머니’에서도 그를 만날 수 있었다.

#3 2000년 두 번째 방한한 독일의 세계적 안무가 피나 바우슈는 한국의 전통춤을 보고 싶어 했다. 무용기획자 장승헌 씨는 그를 위해 한국의 대표적 춤꾼의 춤을 촬영한 15편의 비디오테이프를 보내줬다. 바우슈는 그중에서 2편을 골랐다. 두 편 모두 그가 춤추는 장면이 들어 있었다. 춤 연극 노래 미술의 경계를 허문 ‘탄츠테아터(춤연극)’의 창시자다운 안목이었다. 바우슈 초청으로 2001년 국립무용단과 독일 4개 도시 순회공연을 펼친 그는 말 한마디 안 통하는 바우슈와 눈빛만으로 하루 종일 대화를 나누는 친구가 됐다. 조부의 뒤를 이어 그가 인간문화재가 된 것은 그 다음 해였다. 47세. 예능분야 최연소였다.》

프랑스 ‘상상축제’ 초청된 밀양백중놀이 인간문화재 하용부 씨

○ 입문 50년만에 첫 단독공연

매년 프랑스 파리에서 펼쳐지는 세계적 공연축제 ‘상상축제’에 초청돼 30일∼4월 1일 바스티유 오페라원형극장(850석)에서 3회 단독공연을 펼칠 하용부 씨(54)의 독특한 이력을 보여주는 일화들이다. 그는 인간문화재이면서도 전통춤의 계승에만 머물지 않고 발레와 현대무용, 연극판을 넘나든 이단아다.

그에게 이번 공연은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먼저 춤에 입문한 지 50년 만에 첫 단독공연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원일 교수가 이끄는 연주단 ‘바람곶’과 김주홍 노름마치 대표(꽹과리)가 특별연주를 맡지만 1시간 20분간 무대를 채우는 것은 대부분 그의 춤사위다.

둘째로는 야외에서 신명나게 펼치는 밀양백중놀이 춤을 무대 양식화하는 것이다. 그는 이를 위해 ‘바람곶’과 1년여 공동작업을 통해 타악기를 과감히 줄이고 거문고와 대금 연주를 접목시켰다. 원 교수는 “야생성이 강한 하용부 선생의 춤이 실내로 들어왔을 때 사라지는 공간을 만들어주기 위해서는 선율이 필요하다”며 “바람곶의 음악은 그런 공간 창출에 주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 즉흥성 강한 창작무 ‘영무’ 선봬

셋째로는 한국의 춤사위를 전통에만 묶어두지 않고 현대에도 생생한 한국인의 몸짓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밀양백중놀이를 구성하는 3대 춤으로서 양반춤, 범부춤, 북춤을 원형으로 선보이는 동시에 즉흥성을 강화한 창작무 ‘영무’를 함께 펼쳐 보일 예정이다. 하 씨는 “중요한 것은 스승의 몸짓과 감성, 신명을 생생하게 살려내는 것이 돼야지 스승의 춤을 그대로 복제하는 것이 돼선 안 된다”면서 한국이 전통문화를 보존한다면서 ‘무형’을 자꾸 ‘유형화’하려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인간의 몸이야말로 전통과 현대가 만나는 장소 아니겠습니까. 현대무용수인 피나 바우슈와 전통무용수인 제가 친구가 될 수 있는 것도 다 몸짓으로 눈짓으로 교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꾸 전통 따로 현대 따로라며 그걸 나누려 합니다.”

○ “우리춤,세계인과 적극 공유해야”

그는 이번 공연을 통해 한국춤사위의 세계화도 꿈꾸고 있다. 맥박이 아닌 호흡에 기초한 한국적 몸짓을 세계인이 공유할 수 있는 춤사위로 전파하겠다는 것이다. 지난해부터는 밀양연극촌에서 독립해 ‘밀양전통예술촌’을 운영하는 것도 그런 포석의 일환이다.

“전통입네 아니네 우리끼리 떠들면 뭐합니까. 밖으로 나가서 세계인과 공유할 수 없으면 소용없습니다. 하용부의 춤이 어딜 가나 한번은 먹힐 수 있다고 자신합니다. 하지만 한번에 그친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이번 공연을 계기로 계속 해외공연을 펼치지 못한다면 전 실패한 것입니다.”

그는 프랑스 공연에서 펼칠 춤판을 9, 10일 서울남산국악당에서 먼저 선보인다. 이를 응원하기 위해 공연 중간 현대무용가 차진엽 씨(9일)와 국악인 장사익 씨(10일)의 축하공연과 장승헌 국민대 겸임교수의 해설도 곁들여진다. 2만∼5만 원. 1544-1555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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