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나도…” 해외 교민들 피랍 공포

  • 입력 2007년 8월 31일 03시 03분


코멘트
한국 정부가 테러단체에 인질 몸값을 냈다는 소문이 돌면서 ‘한국인이 납치범의 표적이 될 것’이라는 피랍 공포가 해외 교민들 사이에서 확산되고 있다.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철강 판매업을 하는 한국 교민 이모(54) 씨는 지난주 타지키스탄 수도 두샨베로 출장을 떠나기 전 “현지에서 모르는 사람을 만나면 중국인 행세를 하겠다”며 가족을 안심시켰다.

이 씨 가족과 주변 사람들은 이번 출장을 만류했다. 두샨베 현지 딜러에게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공항을 빠져나오자마자 한국 여권을 숨겨 두라”는 충고까지 들었기 때문이다.

한국 교민의 피랍 공포는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카자흐스탄, 파키스탄 등 아프가니스탄 인접 국가로 출장을 가는 사업가들뿐만 아니라 러시아 지방도시, 아프리카 등 치안 불안 지역으로 관광을 떠나는 여행객들도 느끼고 있다.

모스크바에 머물고 있는 한국인 여행객 박모(43) 씨는 29일 치안 상태가 좋지 않은 곳으로 알려진 러시아 남부 블라디캅카스 관광 일정을 모두 취소했다. 박 씨는 “그동안 해외 납치 문제를 남의 나라 일로 여겼지만 한국인 인질 사태가 세계 각지에 보도된 이후에는 나도 납치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특히 한국 정부가 탈레반과 협상하는 과정에서 거액의 몸값을 줬다는 소문은 교민의 피랍 공포를 하는 부채질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거주하는 교민 최모(37·여) 씨는 30일 “한국 인질이 돈을 주고 풀려났다는 외신 보도가 나온 이후 피랍 공포와 피랍 시 대처 요령에 대한 얘기가 급속히 퍼지고 있다”고 전했다.

정부의 몸값 지불 소문은 인질범들이 대상을 가리지 않고 한국 교민을 무차별적으로 납치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카자흐스탄의 한 교민은 “국가가 인질범에게 몸값을 대신 지불했다면 우리 가족이 가난하다고 해도 언제든 납치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피랍 공포가 확산되면서 치안 위험지역에 주재하는 한국 대사관은 교민들에게 여행주의보를 내리고 있다.

러시아 주재 한국대사관은 인종 분쟁이 끊이지 않는 캅카스 지역을 여행제한구역으로 설정했다. 카자흐스탄 주재 한국대사관도 6일부터 아프간 인접 지역을 출입하는 교민에게 여행주의보를 수시로 내리고 있다.

그러나 장학정 모스크바 한국교민회장은 “교민들에게 ‘한국 여권을 가급적 보이지 말고, 당분간 한국인 관광객이라는 인상을 주면 안 된다’고 얘기할 뿐 뾰족한 대책은 없다”고 말했다.

아프리카 지역도 군소 범죄단체의 모방 범죄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크다. 나이지리아 주재 한국대사관 관계자는 30일 “5월 말 나이지리아에 새 정부가 들어선 후 납치 사건은 상당히 줄었지만 군소조직의 모방범죄 가능성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모스크바=정위용 특파원 viyonz@donga.com

김영식 기자 spear@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