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 칼럼]이택순과 ‘짬짜미 정권’

  • 입력 2007년 8월 30일 22시 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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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하다 교통경찰에게 걸리면 면허증 밑에 지폐를 숨겨 건네던 시절이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이게 사라졌다. 당연한 일 같지만 실은 보통 일이 아니다. 평생 파출소 갈 일 없는 선량한 시민에게는 이만큼 경찰 신뢰도를 높여 준 변화도 없다.

벼슬의 법칙, 충성과 오리발

이택순 경찰청장은 모처럼 확보한 경찰에 대한 신망을 한 방에 보내 버렸다. 그래도 그는 북한산 정기를 받으면 승진할 수 있다는 말에 위장 전입까지 할 만큼 애태웠다가 경찰 총수로 등극해 공직자의 신화를 창조한 인물이다. 이 청장이 입증한 ‘벼슬(보전)의 법칙’은 출세를 꿈꾸는 숱한 이들에게 희망을 줌 직하다.

첫째, 조상까지 챙기는 충성심을 보여야 한다. 대통령의 장인 묘소를 관리하는 권도엽 옹은 신동아 2006년 4월호에서 이렇게 말했다.

“(묘소 앞 컨테이너 경비 초소는) 대통령이 취임하고 나서 곧바로 생겼어. 그때 경남청장이던 이택순이 경찰을 보내 줬어… 참 고마운 사람이야. 남의 조상 묘 잘 지켜 주더니 경찰청장이 됐어.”

기사엔 소개되지 않았지만 권 옹은 권양숙 여사에게도 “묘 걱정은 하지 마라. 경남청장이 직접 와서 잘 지켜 준다”며 안심시켰다는 게 담당 기자의 전언이다.

둘째, 능력은 없어도 거짓말과 오리발은 필수다. 이 청장은 관할지역에서 일어난 대통령 사돈의 석연찮은 교통사고 처리에 대해 “발생 한 달 후쯤 구두 보고만 받았다”고 했고,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보복폭행 사건도 “언론 보도 후에야 알았다”고 했다. 사실이라면 무능했고 거짓말이라면 부도덕했다. 한화 측과의 또 다른 거짓말도 드러났지만 이 정부 인사에서 능력과 도덕성보다 중요한 건 따로 있다.

그게 바로 셋째, 대통령의 통치철학을 확대해 휘두르는 ‘주군(主君)의 지팡이’가 되는 거다. 이 청장은 대통령의 언론관에 발맞춰 3월 불법 시위를 취재하던 기자들을 경찰이 무차별 폭행하는 것을 사실상 방임한 데 이어, 최근엔 대통령의 ‘언론 대못질’을 능가하는 경찰 취재제한 조치를 단행했다. 한화 사건을 놓고 자신을 공개 비판하며 사퇴를 요구한 황운하 총경에 대해선 발생 후 석 달이 지나고도 ‘보복 징계’를 잊지 않았다. 비판과 하극상은 결코 용납 못 한다는 대통령 메시지를 전파한 건 물론이다.

어떤 굴욕에도 굴하지 않고 자리보전에 매진하는 이 청장 같은 공직자를 위해 참여정부는 이미 충분한 보상책을 마련해 두고 있다. 비판과 하극상을 허용하지 않는 독재정권도 억압만 가지고는 부지되지 않는다는 게 ‘독재의 정치경제학’을 연구한 로널드 윈트로브의 지적이다. 내 편을 계속 늘리면서 확실한 이익을 주는 짬짜미가 있어야 한다.

이 정부의 공기업 민영화 중단은 방만, 비효율, 눈먼 돈의 대명사인 공기업을 정권이 움켜쥐고 내 편에게 감투를 나눠 주는 용도가 아니고선 설명하기 힘들다. 더 많은 포상을 해 주려면 고위직과 공조직 확대가 필요할 수밖에 없다. 복지부동 공무원들의 풍요로운 노후를 고려해 공무원연금 개혁은 진작 덮어 버렸다. 김정일의 선군(先軍)정책 뺨치는 선공(先公)정책이고, 과거 정경(政經)유착을 능가하는 정공(政公)유착의 ‘짬짜미 정권’인 셈이다.

공조직까지 국민과 갈라 놓다니

문제는 이 청장 같은 공직자의 성공이 개인의 영광에 그치지 않고 나라와 국민에게 피해를 끼친다는 데 있다. 이 청장은 내년 2월 9일까지 임기를 채우려고 더 무섭게 뛸 터인데 그의 용산고 후배인 이해찬 전 총리가 범여권 대통령 후보가 될 경우의 여파는 헤아리기 어렵다.

이택순 출세의 법칙이 전 공조직에 내면화되고 참여정부를 계승한 다음 정부가 들어선다면, 국민은 대통령에게만 충성하는 공복(公僕)을 위해 세금을 쥐어짜야 할 판이다. 집권 내내 편 가르기에 골몰한 대통령이 이젠 국민과 공조직까지 척지게 만들고 있다.

김순덕 편집국 부국장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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