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고전여행]윤동주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

  • 입력 2007년 8월 28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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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는 손을 들어 분명히 가리킬 수 있는 자신만의 하늘을 가져 본 적이 없었습니다.

사내가 그토록 좋아하고 그리워하던 하늘이 다른 나라 손아귀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내는 무척 괴로웠습니다. 마음 터놓고 이야기할 사람을 만나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그는 조금씩 병들어 갔습니다. 참지 못할 만큼 아픈 어느 날, 그는 병원을 찾았지만 늙은 의사는 그가 아픈 까닭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사내는 병원 뒤뜰에 누워 자신의 얼굴과 이름에 대해서, 자신의 이름이 살아갈 앞날에 대해서, 그리고 파란 하늘과 바람과 별에 대해서 생각했습니다. 생각이 흘러넘쳐 눈물이 되었을 때, 사내는 몇 줄의 시(詩)를 썼습니다.

사내는 삶의 대부분을 남의 나라에서 보냈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부모님의 땀 묻은 학비로 마련한 공책을 옆에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를 들으러 갔습니다. 가는 길에 사내는 생각에 잠겼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무엇을 바라고 홀로 여기에 있는 것일까.’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물음이었기 때문인지, 사내는 쉽게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인생이 무엇인지, 자신은 어디로 나아가고 있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상하리만치 시(詩)는 쉽게 씌어졌습니다. 사내는 ‘시가 그토록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썼습니다.

사내는 나라를 빼앗긴 채 살아야만 하는 자신이 미웠습니다. 나라를 빼앗긴 사람으로 살아야만 하는 자신의 이름이 부끄러웠습니다. 자신에 대한 미움과 부끄러움이 견디기 힘들 만큼 차오르는 날이면, 사내는 별빛이 가득한 언덕을 오르곤 했습니다. 사내는 별빛이 내리는 언덕 위에 자신의 이름을 써보고는, 이내 흙으로 덮어버렸습니다. 부끄러운 이름이 슬펐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사내는 이제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더는 아파하고만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사내는 괴로웠지만 행복했던 예수 그리스도처럼 살기로 다짐했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주어졌던 것처럼 자신에게도 십자가가 허락되기를 바랐습니다.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 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릴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영원히 죽지 않는 독수리가 뜯어먹더라도, 필요하다면 자신의 간(肝을) 내어주기로 결심했습니다. 다시는 편안하게 살려는 유혹에 떨어지지 않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만족하면서 살려고 하는 마음이 고개를 들 때면, 사내는 또 다른 고향으로 떠나기로 했습니다.

바라볼 하늘 한 조각 지니지 못한 것이 부끄럽고 슬프다고 말하는 이 사람의 마음은 어떤 색깔일 것 같습니까?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십자가를 짊어지겠다고, 부족하다면 자신의 간마저 내놓겠다는 그의 눈동자는 무엇을 담고 있을 것 같습니까? 이 사내의 이름은 윤동주입니다.

광복을 코앞에 둔 1945년 2월 16일, 29세의 윤동주는 일본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보낸 2년의 삶에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그의 죄명은 ‘독립운동’이었습니다. 감옥에 있는 동안, 윤동주는 매달 가족에게 엽서 한 장을 보냈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난 2월에는 그가 쓴 엽서 대신 “16일 동주 사망, 시체 가지러오라”는 전보만 가족에게 도착했습니다.

윤동주는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기도했던,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던,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기로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눈이 내리지 않는 곳으로 떠난 누군가를 위해 흰 봉투에 하얀 눈(雪)만 넣은 편지를 보낼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또 그는 하늘과 바람, 그리고 ‘바람에 스치우는 별’을 노래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는 윤동주가 삶을 마감한 뒤에야 세상에 태어난 유고시집(遺稿詩集)입니다. 그 속에는 투명한 별과 파란 바람과 맑은 영혼이 있습니다.

책을 펼치면 여러분 마음속에도 파란 바람이 불기 시작할 겁니다.

황성규 학림 필로소피 논술전문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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