턱수염 기르면 자생적 테러리스트?

  • 입력 2007년 8월 17일 03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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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테러 모의 사례’ 분석 논란

“언제부터인가 시끄러운 팝 음악을 듣지 않고 인터넷에서 이슬람 관련 사이트를 열심히 뒤지기 시작한다. 야구장 모자도 벗어던지고 턱수염을 기르기 시작한다.”

미국 뉴욕 경찰국은 15일 공개한 보고서 ‘자생적 테러리스트, 서구에서의 과격화 과정’에서 평범한 시민이 스스로 테러리스트로 변화하는 모습을 이같이 설명했다.

이 보고서에는 9·11테러 이후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발생한 테러 사건들과 사전 적발된 테러 모의 사례들을 분석한 자료가 담겨 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자생적 테러리스트들은 약속 장소를 정할 때 이슬람 사원보다 책방, 카페, 택시운전사 대기 장소, 정육점 같은 ‘자연스러운’ 장소를 선호한다. 학생단체나 비정부단체 모임에서 만나 과격 이슬람주의 동조자를 규합하기도 한다.

이들 자생적 테러리스트에게 인터넷은 ‘사이버 아프가니스탄’이다. 알 카에다가 아프가니스탄에서 조직을 구축하고 조직원을 훈련시켰듯이 이들은 인터넷에서 과격하고 극단적인 이슬람 이념들을 접하며 조직원들을 세뇌하고 테러 정보를 교환한다.

이 자생적 테러리스트들은 대부분 사법 당국의 감시망 밖에 있다는 것도 특징이다. 테러 행위에 들어가기에 앞서 경찰에 체포된 경험이 있는 사람이 드물기 때문.

이들은 과격화 초기에는 좀처럼 여행을 하지 않으며 문제가 되는 행동에 연루되지도 않는다. 그 대신 지하드(성전)를 수행할 수 있는 결의를 점차 다져 나간다.

이 보고서는 “자생적 테러리스트들이 주변의 평범한 사람처럼 행동하고 말하기 때문에 미리 포착하기가 매우 어렵다”며 “유럽에 비해 자생적 테러리스트의 위협이 적은 것으로 알려진 미국도 더는 자생적 테러공격의 안전지대가 아니다”라고 경고했다.

한편 이날 보고서가 공개되자 미국 내 아랍계 시민단체들은 “평범한 아랍계 미국인들의 행동까지 테러리스트 유형으로 규정했다”며 일제히 반발했다.

파베즈 아메드 미·이슬람 관계위원회 의장은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이슬람처럼 옷차림을 하고 나쁜 습관을 버리는 것이 왜 의심스러운 행동으로 간주돼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또 아랍계 미국인들은 “미국은 유럽과 달리 자생적 테러 위협이 적으며, 오히려 알 카에다처럼 외부의 조직화된 테러가 더 큰 문제”라고 이 보고서의 내용을 반박했다.

그러나 레이먼드 켈리 뉴욕 경찰국장은 “젊은이들이 어떤 과격화 과정을 겪는지를 잘 파악해야 테러 행위를 미리 막을 수 있다”며 이 보고서를 옹호했다.

뉴욕=공종식 특파원 k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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