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에서 걸러진 새 시집 ‘공중묘지’(민음사)는 차라리 담담하다. 시인은 정직해서 눈에 보이는 묘지의 풍경을 그려놓고 거기서 본 죽음의 풍경을 사유한다. 그것은 죽음이 ‘먼 일’로 여겨질 대부분의 독자를 숙연하게 한다. 가령 시 ‘2000년 서울, 겨울’이 그렇다. ‘우리의 오늘은 좁은 골목이며, 작은 방이며 우리의 다음은 썩은 쓰레기이리라. 나는 비로소 아무 것도 아니었음을, 나는 아무것이었을 분, 나는 누구의 자식도 아니다.’
놀라운 것은 시인이 음습한 죽음의 기운과 가까운 삶을 살았음에도 사랑을 믿는다는 것이다. ‘그녀는 내가 빌린 집의/작은 난로 같고/내가 오래 먹은 감기약 같고/뼈를 묻고 싶은 사막의 모래 같고’(‘오랜 사랑1’에서)나 ‘아, 새로 배울 그 언어는 얼마나 신선할까요./이리 와 봐, 나는 널 좋아해./이런 말을 다시 배울 것 아니겠어요’(‘달팽이관’에서) 같은 시는 묘지의 시인이 죽음을 이기는 구원으로서의 사랑을 갈구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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