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강한 인력과 자산은 기본이고 엄청난 인맥과 월가(街)에서의 영향력, 화려한 실적이 수식어로 따라붙는 골드만삭스가 두 눈 뜨고 당했다. 웬일인가.
골드만삭스의 ‘GEO 펀드’는 컴퓨터가 투자 결정을 하는 ‘퀀터티브(quantitive·계량적·약칭 퀀트) 펀드’다. 투자 대상 가운데 가격이 적정 가치보다 높으면 팔고 낮으면 사는 등 갖가지 공식에 따라 거래를 한다. 그동안 실적도 좋았다.
이 펀드 자산은 최근 50억 달러에서 36억 달러로 푹 줄었다. 지난주 서브프라임 사태에 따른 폭락장에서 컴퓨터의 판단에 따라 빚까지 내서 주식을 사들인 결과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는 신용도가 낮은 사람에게 높은 금리로 집 살 돈을 빌려 주는 회사다. 집값은 떨어지고 금리는 오르면서 대출의 연체율이 높아진 게 작년 말, 부실이 터진 게 올봄이다. 미국 금융자산의 1%에 불과한 이 시장의 위험요인을 증폭시켜 전 세계로 확산시킨 게 바로 현대금융시장이다. 금융상품을 결합하거나 복잡한 조건을 붙여 만든 파생금융상품에 서브프라임 관련 증권도 섞여 들어간 탓이다.
한 시장의 위험을 다른 시장으로 전이시키는 부작용을 낳는 파생금융상품에 대한 숱한 경고들은 계속 무시돼 왔다. 이번 사태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미국과 유럽, 일본 중앙은행의 자금 공급과 함께 골드만삭스의 추가 투자 발표가 위험한 시장, 위험한 상품에 대한 걱정을 덜어 준 때문이다.
골드만삭스가 GEO에 추가로 넣은 돈은 30억 달러. 그중 10억 달러는 두 명의 억만장자가 냈다. 이번 투자가 잘되면 골드만삭스는 실패한 펀드도 살리고 뒷돈을 댄 억만장자들과 함께 또 거액을 벌 것이다. 결과가 불만족스러울 경우 골드만삭스는 더 큰 돈을 집어넣어 이 펀드를 성공시킬 수도 있다. 이것도 월가의 운행 방식 중 하나다.
뉴욕증시의 불안감은 아직 남아 있다. 서브프라임 문제가 해결된 게 아니며 다른 모기지 시장으로 확산돼 가는 점도 악재다. 그렇다 해도 시장 불안을 줄이기 위해 투자은행이나 헤지펀드의 행태가 바뀌진 않을 것 같다. 변화가 있더라도 그들의 이익을 위해서일 것이다. 월가는 그렇게 살아간다.
세계 투자은행, 중소형 헤지펀드 등 국제금융시장의 선수들은 이미 한국 무대에서도 뛰고 있다. 국내 ‘개미’ 투자자들은 이들의 얼굴도 모른 채 한판 승부를 벌이는 셈이다. 요즘은 국내에서 직접투자를 하려면 태평양 건너 골드만삭스의 투자 결정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서브프라임 사태의 후폭풍은 또 얼마나 거셀 것인가. 시장이 불안하거나 유동성이 부족해지면 세계 투기성 자금은 안전 투자처로 돌아가기 마련이다. 돈이 국경 너머로 달아나는 시장의 충격은 우리가 10년 전 경험했다. 권오규 경제부총리는 14일 일본의 저금리를 피해 고수익 시장에 투자된 ‘엔 캐리 자금’이 국내에서 급격히 빠져나갈 경우의 혼란 가능성을 경고했다. 국제금융시장이 살얼음판보다 더 불안한 계절이다.
홍권희 논설위원 koni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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