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홍권희]서브프라임 더하기 엔 캐리

  • 입력 2007년 8월 15일 19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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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금융시장을 뒤흔든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와중에 세계 최대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의 행보가 눈길을 끈다. 여러 투자은행과 함께 ‘천하의’ 골드만삭스가 물렸다는 점, 투자 실패를 ‘추가 베팅’으로 풀어 가는 점이 그렇다.

막강한 인력과 자산은 기본이고 엄청난 인맥과 월가(街)에서의 영향력, 화려한 실적이 수식어로 따라붙는 골드만삭스가 두 눈 뜨고 당했다. 웬일인가.

골드만삭스의 ‘GEO 펀드’는 컴퓨터가 투자 결정을 하는 ‘퀀터티브(quantitive·계량적·약칭 퀀트) 펀드’다. 투자 대상 가운데 가격이 적정 가치보다 높으면 팔고 낮으면 사는 등 갖가지 공식에 따라 거래를 한다. 그동안 실적도 좋았다.

이 펀드 자산은 최근 50억 달러에서 36억 달러로 푹 줄었다. 지난주 서브프라임 사태에 따른 폭락장에서 컴퓨터의 판단에 따라 빚까지 내서 주식을 사들인 결과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는 신용도가 낮은 사람에게 높은 금리로 집 살 돈을 빌려 주는 회사다. 집값은 떨어지고 금리는 오르면서 대출의 연체율이 높아진 게 작년 말, 부실이 터진 게 올봄이다. 미국 금융자산의 1%에 불과한 이 시장의 위험요인을 증폭시켜 전 세계로 확산시킨 게 바로 현대금융시장이다. 금융상품을 결합하거나 복잡한 조건을 붙여 만든 파생금융상품에 서브프라임 관련 증권도 섞여 들어간 탓이다.

한 시장의 위험을 다른 시장으로 전이시키는 부작용을 낳는 파생금융상품에 대한 숱한 경고들은 계속 무시돼 왔다. 이번 사태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미국과 유럽, 일본 중앙은행의 자금 공급과 함께 골드만삭스의 추가 투자 발표가 위험한 시장, 위험한 상품에 대한 걱정을 덜어 준 때문이다.

골드만삭스가 GEO에 추가로 넣은 돈은 30억 달러. 그중 10억 달러는 두 명의 억만장자가 냈다. 이번 투자가 잘되면 골드만삭스는 실패한 펀드도 살리고 뒷돈을 댄 억만장자들과 함께 또 거액을 벌 것이다. 결과가 불만족스러울 경우 골드만삭스는 더 큰 돈을 집어넣어 이 펀드를 성공시킬 수도 있다. 이것도 월가의 운행 방식 중 하나다.

뉴욕증시의 불안감은 아직 남아 있다. 서브프라임 문제가 해결된 게 아니며 다른 모기지 시장으로 확산돼 가는 점도 악재다. 그렇다 해도 시장 불안을 줄이기 위해 투자은행이나 헤지펀드의 행태가 바뀌진 않을 것 같다. 변화가 있더라도 그들의 이익을 위해서일 것이다. 월가는 그렇게 살아간다.

세계 투자은행, 중소형 헤지펀드 등 국제금융시장의 선수들은 이미 한국 무대에서도 뛰고 있다. 국내 ‘개미’ 투자자들은 이들의 얼굴도 모른 채 한판 승부를 벌이는 셈이다. 요즘은 국내에서 직접투자를 하려면 태평양 건너 골드만삭스의 투자 결정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서브프라임 사태의 후폭풍은 또 얼마나 거셀 것인가. 시장이 불안하거나 유동성이 부족해지면 세계 투기성 자금은 안전 투자처로 돌아가기 마련이다. 돈이 국경 너머로 달아나는 시장의 충격은 우리가 10년 전 경험했다. 권오규 경제부총리는 14일 일본의 저금리를 피해 고수익 시장에 투자된 ‘엔 캐리 자금’이 국내에서 급격히 빠져나갈 경우의 혼란 가능성을 경고했다. 국제금융시장이 살얼음판보다 더 불안한 계절이다.

홍권희 논설위원 koni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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