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권순택]범여권 386 의원들의 위기

  • 입력 2007년 8월 13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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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우리당에서 민주신당으로 겉옷만 바꿔 입은 우상호 의원의 손학규 전 경기지사 대선 캠프 합류로 ‘386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연세대 총학생회장 출신인 우 의원은 2004년 4·15총선 때 탄핵 역풍으로 금배지를 단 386세대 ‘탄돌이’ 정치인이다.

일부 범여권 386 의원이 한나라당을 뛰쳐나와 범여권 대선 주자 선호도 1위에 오른 손 전 지사 지지로 쏠린다는 소식에 ‘스크럼 정치’ ‘운동권 연고주의’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었다. 그런 터에 우 의원이 캠프 대변인을 맡게 되자 논쟁이 촉발한 것이다.

“민주화운동을 주도한 386세대 정치인이 한나라당 출신을 지지하는 것을 인정할 수 없다.” “한나라당에서 10여 년을 호의호식하다 밀려난 인사를 지지하는 그들은 젊음도, 양심도, 정의도, 이름도 모두 내쳐 버렸으니 이제 386도 아니다.” 틀린 말이 아니다. 대표적인 386 시민운동가인 김기식 참여연대 정책위원장은 ‘386세대에 대한 모욕’이라고 비판했다.

우 의원은 한 인터넷 신문 인터뷰에서 “손 전 지사가 젊은 시절에 민주화운동을 했다는 자부심과 긍지를 갖고 있다”며 ‘정권 재창출을 위한 현실적 선택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그러자 ‘6·3세대 운동권인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왜 안 되느냐’는 반박이 나왔다.

20년 전 6월 민주화운동의 주역인 386세대는 유럽의 ‘68혁명세대’나 미국의 1960년대 말 반전운동 세대와 비교된다. 독일 68세대는 30년 만인 1998년 사민-녹색당 연정으로 집권했지만 이미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다. 영국은 6월 취임한 고든 브라운 총리가 68세대 출신 첫 총리다.

특정한 운동 세대가 한국처럼 한꺼번에 이렇게 많이 정치권에 진입한 경우는 유례가 없다. 386세대는 노무현 정권 탄생으로 너무 일찍 의회와 행정 권력의 중심에 섰다. 준비가 됐을 리가 없다. 너무 일찍 권력의 단맛을 봐 버린 셈이다. 그래서일까. 범여권 386 정치인들의 요즘 모습은 권력 금단 현상이 두려워 방황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58명의 386세대 의원의 주류는 전대협 간부와 대학 학생회장 출신이지만 다 같은 부류는 아니다. 판검사 변호사 출신이 12명, 박사나 교수 출신의 전문성을 갖춘 의원도 12명이나 있다. 이미 재선 의원이 6명이며 3선 의원도 2명이나 된다.

특히 범여권에는 386 의원이 38명이나 있다. 원내 교섭단체를 2개 정도 만들 수 있는 세력이다. 그런데도 이들은 뭔가를 보여 줬다고 내세울 게 없다. 새로운 정치문화 형성에 실패했다는 쓴소리를 들어도 할 말이 없다. 열린우리당이 ‘도로 열린우리당’이 되는 과정에서도 그들만의 목소리가 없었으니 뭘 더 기대하겠나.

손 전 지사를 정권 재창출의 도구로 쓰겠다는 것도 3김(金) 정치 같은 발상이다. 김대중 정권 말에 재집권 가능성이 희박해진 동교동계가 신한국당 경선 불복의 전력이 있는 이인제 의원에게 매달린 것과 뭐가 다르냐는 소리가 나오는 것도 당연하다.

386 정치인들은 앞으로 20년 정도 정치권에서 활동할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야당 의원도 해 보고, 원칙과 대의를 지키다 낙선의 고배도 마시면서 인간적, 정치적으로 성숙해질 필요가 있다. 원래 쉽게 얻으면 쉽게 잃는 법이다.

권순택 논설위원 maypo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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