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나성엽]기업엔 압박, 근로자엔 환상…

  • 입력 2007년 8월 9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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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24시간 들여다보고 있는데 어떻게 소신껏 인사(人事)를 할 수 있겠습니까.”

노동부가 가칭 ‘고용정보 시스템’을 만들고 있으며 이를 곧 가동할 계획이라는 본보 보도를 본 한 기업 인사팀 관계자는 이렇게 푸념했다.

▶본보 7일자 A2면 참조
노동부 “기업 비정규직 인원 조회망 곧 가동” 재계 반발

그는 “기업의 인사정보를 정부가 매일 파악한다는 것은 선진국에서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며 “기업 활동이 상당히 위축될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했다.

고용정보 시스템이 완성되면 정부는 근로자 300인 이상 1700여 개 기업의 기간제 근로자, 파견 근로자 등 비정규직 근로자의 고용 현황을 매일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정부가 기업 활동의 가장 고유한 분야인 인사를 직접 감시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기업들의 불안감에 대해 해명하는 노동부의 답변은 너무 안이했다.

노동부는 “기업을 압박하겠다는 의도는 없으며 비정규직 현황 등을 파악하기 위한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이보다는 익명을 요구한 노동부 관계자의 얘기가 솔직하게 들린다. 이 관계자는 “근로자 300인 이상 기업들이 솔선해서 비정규직보호법 취지에 맞게 움직여 줘야 나머지 기업들도 따라올 것 아니냐”라고 털어놨다.

결국 기업들이 비정규직보호법 취지에 따라 인사를 하고 있는지를 감시함으로써 정부의 뜻대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속도를 높이려는 속셈이다.

7월 1일 비정규직보호법이 시행된 이후 비정규직 문제와 관련해서 노동부가 보인 이해하기 힘든 행동은 이뿐이 아니다.

노동부는 이달 6일 300인 이상 기업 766곳 중 36.6%인 280개 기업이 올해 상반기(1∼6월)에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한 실적이 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조사 대상 업체의 전체 비정규직 근로자 20여만 명 중 정규직으로 전환된 인원은 4% 정도(7892명)에 불과했다.

이랜드그룹 유통계열사의 파업 사태에서 드러난 것처럼 섣불리 도입된 비정규직보호법이 기업 경영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묘수는 없다. 노동부가 ‘분위기 띄우기’에만 관심을 쏟는다면 비정규직보호법의 부작용은 갈수록 커질 수밖에 없다. 어려울수록 정도로 가야 한다.

나성엽 사회부 cp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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