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정성희]학원이 짜주는 피서스케줄

  • 입력 2007년 8월 8일 03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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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중 우리나라에 없는 학원은? ①카투사 시험 준비학원 ②기업 인성 적성검사 준비학원 ③유아MBA 학원 ④과외교사 양성학원. 며칠 전 TV에 나온 이 퀴즈를 보고 쉽게 정답을 찍었다. “시청자를 너무 우습게 보는 것 아냐?” 하면서. 그런데, 어머나. 정답은 ③번이 아니었다. ‘학원 천국’인 대한민국에 없는 학원은 뜻밖에도 ④번인 ‘과외교사 양성학원’이었다.

‘7말 8초’에 휴가가 몰리는 이유

아이들을 사교육에 전적으로 맡겨놓다시피 하는 상황에서 과외교사 양성학원이 없다는 사실은 기묘하다. 그 대신 활약하는 사람들이 있다. 학원 강사 증명서 위조 브로커다. 서울 강남 학원가의 가짜 학위 강사들을 조사해 온 서울 송파경찰서는 1차로 31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 조사가 시작되자 많은 강사가 사직했다고 하니 ‘사교육 1번지’도 가짜 학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나 보다.

한국은 원래 쏠림현상이 심한 나라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쏠림이 심한 분야가 여름휴가 시즌이다. 7월 말부터 8월 초까지 전국의 산과 바다, 계곡과 유원지는 피서객으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인파와 바가지요금, 예정된 불친절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이 기간에 휴가를 떠난다. 전국의 학원들이 약속이나 한 듯 이 날짜에 맞춰 방학을 하기 때문이다. 초중고교들은 7월 중순 방학에 들어가지만 학원에 묶인 아이들에게 진짜 방학은 이때뿐이다.

휴가 일정뿐 아니다. 학원이 우리 삶에 파고들어 바꿔버린 생활방식은 많다. 학생 휴대전화 보급률이 그렇다. 외국에선 비즈니스맨들이나 사용하는 휴대전화를 한국 학생들이 누구나 갖게 된 것은 학교와 학원, 학원과 학원을 오가는 시간을 맞추기 위해 부모들이 사주었기 때문이다.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학원 러시아워’가 있는 나라가 한국이다.

사교육이 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 또한 상상을 초월한다. 현대경제연구원이 올해 4월 발표한 ‘사교육, 노후 불안의 주된 요인-사교육 실태 및 시장규모 추정’ 보고서는 지난해 사교육비 규모를 33조5000억 원으로 잡고 있다. 올해 교육예산 31조 원을 초과하는 금액이다. 통계청 가계조사 자료의 가구당 월평균 보충교육비에 근거해 추산한 한국교육개발원의 사교육비는 22조5000억 원이다. 올해 국방예산 24조5000억 원과 비슷한 규모다.

국민경제에서 이렇게 큰 비중을 차지하는 사교육의 효과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없는 것은 불가사의한 일이다. 교육당국은 공교육을 되살림으로써 사교육을 줄이겠다고 했지만 결과는 반대로 나타나고 있다. 학교생활에 충실하도록 내신반영 비율을 높였지만 내신 과외가 등장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사교육은 경쟁상대가 그만두지 않으면 자신도 멈출 수 없다는 점에서 군비 경쟁과 비슷하다. 사교육은 남들이 받지 않고 내 자녀만 받을 때 효과가 극대화되는 법인데 모두가 사교육을 받기 때문에 효과 여부와 관계없이 안 받을 수 없고, 끝내는 더 좋은 사교육, 더 비싼 사교육을 찾게 된다. 미사일로 충분했던 안보가 핵무기가 있어야 하는 안보로 에스컬레이트되고, 세금 내는 국민만 죽어나는 것과 같다.

군비경쟁 같은 소모적 私교육

이런 상황에서 ‘사교육을 줄이자’는 구호나 ‘내신반영 비율 제고’와 같은 대책은 효력을 발휘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사교육의 공과(功過)가 스스로 드러나도록 세월만 보낼 수도 없을 것이다.

우선 급한 대로 사교육시장의 거래 질서라도 바로잡아야 한다. 한 달에 600만 원씩 하는 방학특강 등 말도 안 되는 바가지 학원비를 단속하고 세금 탈루도 막아야 한다. 학력을 속인 강사도 솎아내야 한다. 거기에다 국민의 행복추구권 보호 차원에서 학원들이 똑같은 시기에 방학하는 것까지도 막아주면 더 좋겠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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