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카르자이 ‘납치범과 협상불가’ 재확인

  • 입력 2007년 8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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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가니스탄 대통령은 6일 미 메릴랜드 주의 캠프데이비드 별장에서 열린 정상회담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탈레반 무장세력의 한국인 납치 문제에 대해선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정통한 외교 소식통은 “정상회담 의제의 우선순위는 포괄적 의미의 테러와의 전쟁, 아프간 민간인 희생자 급증을 비롯한 민생 문제, 이어 파키스탄-아프간 정상회담이었다”며 “인질 문제를 일부로 뺀 것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탈레반 측이 정상회담 결과와 한국인 추가 살해 위협을 연계시키려는 움직임을 차단하려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왔다.

다만 탈레반에 대해 두 정상은 한목소리로 강도 높은 비판을 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와 달리 정상회담 전 카르자이 대통령은 인질 사태에 대해 비교적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그는 5일 CNN과의 인터뷰에서 “더 많은 납치와 테러리즘을 조장하는 것만 아니라면 한국인 인질들의 석방을 위해 모든 일을 다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인질 석방을 위해 탈레반과 직접 협상을 할 용의가 있느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다. ‘인질과 탈레반 죄수 맞교환’이라는 탈레반의 요구에 응하지 않을 것임을 밝힌 것으로 해석됐다.

5일 만찬에 이어 6일 오전 계속된 회담에서 두 정상은 “한국인 인질들의 안전과 석방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한다”는 점과 “납치범들과의 협상은 더 많은 납치와 테러를 초래할 것이기 때문에 안 된다”는 점을 재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상회담에 앞서 미-아프간 관리들 간의 조율 과정에서도 미국 측은 카르자이 대통령의 탈레반 정책에 확고한 원칙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카르자이 대통령은 아프간 국민이 전쟁에 너무 지쳐 있다는 점을 들어 탈레반과의 대화를 통해 폭력 사태를 해결하려는 자세를 보여 왔다.

한 소식통은 “이번 정상회담은 탈레반 저항 활동과 민간인 피해가 급증하면서 국내정치적으로 어려운 처지에 놓인 카르자이 대통령이 미국의 강력한 지원을 재확인하는 차원에서 마련된 것”이라며 “납치 사건의 경우 원칙과 최선을 다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 이외에 구체적 대목까지 논의가 진행되기는 어려운 분위기였을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카르자이 대통령도 납치 테러 문제에 관한 한 원칙론 쪽으로 돌아서고 있다는 게 외교 소식통들의 전언이다. 이탈리아 기자 납치 사건 때 카르자이 대통령이 풀어준 탈레반 지휘관이 파키스탄-아프간 국경 지역에서의 테러 공격을 진두지휘하고 있고, 법관 살해 등 탈레반의 납치 테러 행위가 갈수록 기승을 부려 “더 물러서면 오히려 탈레반을 부추길 수 있다”는 인식이 아프간 정부에서 확산되고 있다는 것. 이에 따라 카르자이 대통령도 대(對)탈레반 유화책의 한계를 고민할 수밖에 없는 것으로 보인다.

카르자이 대통령은 CNN과의 인터뷰에서도 “한국인 인질 대부분이 여성인데 진정한 무슬림이나 아프간인은 여성을 상대로 그런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다”며 “납치범들은 무슬림도 아니고, 아프간인도 아니다”고 강력히 비판했다.

카르자이 대통령은 ‘시간 단위로 아프간 정부 관리들과 인질 사태를 논의한다’며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아프간 정부 협상 관계자도 “미국이 수감자 맞교환에 반대할 뿐 아니라 아프간 정부 방침에도 어긋난다”며 인질-죄수 맞교환 불가 방침을 확인한 바 있다.

워싱턴에선 결국 사태 해결의 직접적 열쇠가 미국이나 아프간 정부에서 나오기를 기대하기는 힘든 상황이라는 지적이 많다. 결국 한국 정부의 협상력 및 국제사회와 이슬람권의 지원을 동원할 수 있는 외교력에 인질들의 명운이 달려 있다는 분석이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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