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하창우]국정원, 빅브러더 꿈꾸나

  • 입력 2007년 8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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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정보원의 ‘부패척결 태스크포스(TF)’팀이 지난해 8월 한나라당 대선주자인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처남 김재정 씨의 부동산 자료를 열람한 사실이 밝혀졌다. 또 국정원이 같은 달 한 달 동안 행정자치부 전산망을 통해 주민등록과 등기부 등 2924건의 국민 개인정보를 들여다본 사실이 드러났다. 국정원이 월평균 2590여 건의 자료를 열람했다고 밝혔으니 연간 3만 건의 국민 개인정보가 국정원에 흘러들어간 것으로 추정된다.

개인정보 조회는 실정법 위반

여기에 국정원 전산망이 국세청의 세금 관련 정보, 건설교통부의 건물 토지 등 부동산 정보, 법무부의 출입국 기록 조회, 경찰청의 전과 조회는 물론 금융감독원의 은행계좌 조회 및 건강보험공단의 진료기록과 보험료 납부 명세 조회에 이르기까지 17개 아이템의 행정전산망과 연결돼 있다고 하니 국정원은 국민의 모든 정보를 손바닥 들여다 보듯 꿰뚫고 있는 셈이다.

현대 사회는 정보화 사회다. 정보통신의 발달로 개인의 신상에 관한 모든 정보는 컴퓨터 네트워크를 통해 이뤄진다. 정보의 집적이 쉬운 만큼 정보의 관리도 간편하다. 그러나 그만큼 정보관리자의 정보 악용도 쉽게 발생할 수 있다.

이 경우 개인의 사생활은 중대한 위기에 처할 수 있으므로 헌법은 국민에게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보장한다. 행정기관이 이 권리를 침해하는 경우 국민은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은 개인정보를 보호하고 정보를 부당하게 제공하거나 제공받는 자를 처벌하고 있다.

국정원이 국민의 개인정보를 들여다볼 수 있는 어떤 법적 근거도 없다. 국정원법이나 정보·보안업무기획조정규정 등 어디에도 개인정보를 직접 열람할 수 있다는 규정은 없다. 국정원이 마음대로 개인정보를 조회한다면 실정법 위반이다.

국정원은 국정원법 15조를 열람의 근거로 들지만 여기에는 국정원장이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 관계 국가기관 및 공공단체의 장에게 협조를 요청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으므로 상대기관의 승낙 없이 정보를 빼낸다면 위법이다. 국정원이 자체적으로 기록을 남기더라도 합법성을 갖추는 것은 아니다.

국정원의 직무범위는 국정원법 3조에 의해 대공·대정부 전복·방첩·대테러 및 국제범죄조직 등 보안 정보의 수집·작성 및 배포, 국가기밀에 속하는 보안 업무, 내란·외환·반란 등에 대한 수사로 한정된다.

국정원의 직무를 이렇게 엄격히 규정한 이유는 과거 권위주의 시대 국정원이 정치사찰이나 인권 탄압에 관여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국정원이 한 달 동안 직무와 무관한 토지대장과 등기부 등 정보를 열람한 것은 국민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행정전산망 공유 최소화해야

부패와 비리가 안보라면 국정원이 간여 못 할 일이 없다. 그래서 ‘부패척결 태스크포스’팀이 김재정 씨의 부동산 자료를 열람한 행위가 민간인에 대한 근거 없는 정치사찰이라고 비판받는 것이다.

정부의 거대한 행정전산망에는 국민의 모든 개인정보가 담겨 있다. 정보의 열람이 쉬워지면 사생활의 감시가 쉬워진다. 여러 국가기관이 국민의 개인정보가 들어 있는 행정전산망을 공유하는 행위는 국민의 사생활을 상호 감시하는 결과를 낳는다. 국민을 조지 오웰의 소설 속 ‘빅브러더’의 감시 속에 옭아매는 일과 다름없다.

국민의 사생활을 보호하기 위해 행정 정보의 공동 이용과 관련해서 이용이 허용되는 정보의 범위와 이용 절차를 엄격히 규정하고, 이를 위반한 경우 처벌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하창우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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