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숙 을유문화사 회장 “책과 함께 살아온 내 인생은 축복”

  • 입력 2007년 8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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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나무는 천 년이 지나도 곡조를 머금고 있고, 매화의 일생은 춥지만 향기를 팔지 않는다(桐千年老恒藏曲, 梅一生寒不賣香).”

은석 정진숙(隱石 鄭鎭肅). 국내 출판계의 1세대로 꼽히는 정진숙(95·사진) 을유문화사 회장이 6일 펴낸 자서전에서 인생 철학을 밝힌 글이다. 평생 출판 한길을 걸어온 우리 시대의 거목임에도 책 제목은 간결했다. ‘출판인 정진숙.’

그의 저서는 단순한 자서전이 아니라 한국 출판의 역사서다. 정 회장은 자서전에서 “을유해(1945년) 문화 사업을 통해 민족문화를 계승하고 발전시킬 뜻으로 을유문화사를 세웠다”고 밝혔다. 1946년 첫 결과물인 ‘가정 글씨 체첩’에 대해서는 “사라진 언어문자를 복구하고 어린 세대가 한글을 터득하려면 꼭 만들어야 했던 시절의 아픔이 스며 있었다”고 회고했다.

1947년 10월 첫 권이 발행된 ‘조선말 큰 사전’은 ‘나랏말 큰 사전’이란 제목으로 한 장(章)을 할애할 만큼 애정이 깊었다. “일제에 조선어학회원들이 압수당한 원고를 1945년 9월 서울역 한국통운 창고에서 기적적으로 찾아냈다. 자금 압박에 시달렸으나 ‘언젠가 해내야 할 일’이라 믿었다. 그들이 놓고 간 원고는 이후 10년에 걸쳐 모두 3558쪽 6권으로 완간됐다.”

자서전에는 1970년 발간한 ‘한국사’의 영문판 ‘더 히스토리 오브 코리아(The History of Korea)’에 대한 각별한 애정도 언급됐다. 정 회장은 “금전적으로 손해를 보고 안 보고는 중요하지 않았다. 해외에 한국의 역사를 제대로, 아니 처음으로 알릴 수 있다는 게 중요했다”고 회고했다. 이 책은 한국 역사를 본격적으로 소개한 최초의 영문 한국사였다.

출판업을 시작할 당시 위당 정인보(爲堂 鄭寅普) 선생이 해 준 말씀도 상세히 소개했다. “조풍연(언론인·수필가) 윤석중(아동문학가) 등이 함께 출판업을 권했으나 썩 내키질 않았다. 먼 친척 할아버지뻘 되던 위당이 찾으시더니 ‘문화유산을 되찾는 게 진짜 애국자다. 민족혼을 되살리는 유일한 문화적 사업이야말로 출판인데 왜 그걸 안 하겠다는 거냐’고 불호령을 내리셨다.”

대통령 표창장(1968년) 국민훈장 동백장(1970년) 금관문화훈장(1997년) 등 영예를 얻었으나 그는 늘 출판인의 삶에 감사하고 헌신했다. “출판을 천직으로 삼은 것은 운명이고 축복이었다. 숱한 삶 가운데 책과 함께 살아가는 인생처럼 좋은 것이 어디 있겠는가.”

정 회장은 최근에도 서울 종로구 수송동 사옥으로 매일 오전 9시 출근하면서 출판에 대한 애정을 놓지 않았다. 그는 자서전에서 “출판은 장사 수단이 돼서는 안 된다. 책은 문화의 창조와 민족 역사 계승에 가장 중요한 견인차”라는 신념을 피력했다.

정 회장의 손자 정상준 을유문화사 상무는 “(할아버지께서는) 출판이 사회의 문화 발전을 이끈다는 믿음이 깊으셨다”며 “지난주 건강이 나빠져 입원 치료 중”이라고 말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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