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홍찬식]박수근과 이중섭

  • 입력 2007년 8월 6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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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업의 위력을 설명할 때 자주 등장하는 사례가 화가 빈센트 반 고흐(1853∼1890)의 그림값이다. 고흐가 생존 당시 그림 한 점을 그리는 데 소요된 돈은 100달러 정도로 추정된다. 그의 작품 가운데 ‘가셰 박사의 초상’은 1990년 경매에서 8250만 달러에 팔렸다. 미술품을 세속적인 돈의 가치로 따지는 건 작가에게 송구스러운 일이지만 무려 82만5000배의 부가가치를 창출한 셈이다.

▷5월 국내 미술품 경매에서 45억 원에 거래된 박수근의 그림 ‘빨래터’는 80대의 미국인이 50년 동안 소장했던 것이다. 한국에서 몇백 달러에 그림을 구입했을 그는 여생 동안 다 쓰지도 못할 거액을 손에 쥐었다. 세계적으로 고성장을 구가하고 있는 미술시장 주변에서는 이런 ‘대박 신화’들이 수집가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그러나 미술품 값이 높아질수록 독버섯처럼 늘어나는 게 위조품이다. 구매자의 눈을 속일 수만 있다면 간단하게 일확천금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국내 최고의 화가는 역시 박수근과 이중섭이다. 박수근의 그림에는 1950, 60년대 가난했던 시절의 아련한 향수가, 이중섭에게는 꿈틀거리는 예술가의 혼이 느껴진다. 유작은 박수근이 300여 점, 이중섭이 500여 점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작품 수가 적은 만큼 가격도 한없이 뛰어 올라 한 점에 최소 10억 원은 줘야 손에 넣을 수 있다. 그만큼 가짜 그림이 기승을 부려 일단 의심부터 하고 봐야 한다는 게 상식이다.

▷얼마 전 두 화가의 작품 2800점이 새로 공개되면서 진위 공방이 벌어졌고 검찰이 위작 여부를 가리고 있다. 1차 검증 결과 전문가들은 ‘모두 위작’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일부 작품에선 작가 생존 시에는 사용되지 않았던 ‘펄 물감’이 발견됐다. 물감과 캔버스를 구하기조차 힘들었던 시절에 2800점이라는 많은 그림을 그리는 일이 가능했을까. 의심할 만하다. 가짜 소동은 온갖 열악한 여건과 싸우며 우리 앞에 우뚝 선 두 ‘국민화가’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미술계가 단호한 척결 의지를 보이지 않으면 전체가 공멸의 길로 갈 수밖에 없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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