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희수]탈레반은 이슬람을 배반했다

  • 입력 2007년 8월 3일 20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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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레반의 한국인 인질 사건으로 온 나라가 2주째 충격을 받고 있다. 민간인을 납치하고 살해하는 탈레반의 반인륜적 행태에 온 세계가 분노하면서 이슬람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나는 무고한 인명을 해치고 여성을 인질로 삼아 정치적 야욕을 이루려는 시도를 용인하거나 정당화하는 종교적 가치를 알지 못한다.

빵 한조각도 나눠먹는 그들

내가 아는 이슬람은 다르다. 전공의 특성상 10년 가까이 이슬람 국가에서 살아 봤고, 27년째 한 해도 빠지지 않고 중동 전역에서 현지 조사를 하며 돌아다녔어도 무슬림이 나를 해치거나 본질적으로 테러리스트일 거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거의 없다.

순수하고 의리를 존중하는 그들은 처음 만난 사람에게도 빵과 잠자리를 제공한다. ‘공동체에 한 톨의 양식이라도 남아 있는 한 굶주리는 자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무슬림의 삶의 철학이고 공동체 정신이다.

미국의 공격으로 삶의 기반을 상실한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 등지의 급진 무장세력은 미국과 서구를 상대로 힘겨운 전쟁을 벌인다. 그들은 내부 결속을 다지고 공격의 정당성을 포장하기 위해 이슬람이란 명분을 곧잘 내세운다.

하지만 그들의 무차별적인 폭력은 이슬람 정신을 대표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미 이슬람 대중의 지지 기반을 거의 상실했다. 테러집단은 이슬람 전체 세계에서 5%도 채 안 되는 규모다.

우리의 진정한 파트너는 서구와 협력하면서도 자신의 가치를 지키고 한국을 좋아하는 14억 명, 57개 이슬람 국가에 퍼진 95%의 건강한 주류 공동체이다. ‘이슬람=테러리스트’라는 서구가 만들어 놓은 시나리오에 젖어 전체 이슬람 세계를 적대적 이해 당사자로 몰아가는 과오는 되풀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금 중동에서는 한류 열풍이 한창이다. 이집트에서는 ‘겨울연가’가 방영된 이후 재방송을 거듭했다. ‘대장금’이나 ‘해신’ 같은 한국의 드라마는 중동 여러 나라에서 연일 시청률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그들의 한국 사랑은 시장에서도 효력을 발휘한다. 최근 이란과 이집트를 중심으로 가전시장의 60%까지 한국 제품이 석권한다는 놀라운 소식이 들린다. 그뿐이랴. 한국은 중동-이슬람권이 지난 20여 년간 발주한 건설 플랜트 분야에서 수주 1위를 기록했다.

중동-이슬람권은 무엇보다 석유와 천연가스 등 우리가 소비하는 에너지의 90%를 의존하는 지역이다. 상호 의존 관계로 보면 경제적 운명 파트너이고 우리에게는 참으로 ‘효자’ 시장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우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중동-이슬람권에 대한 지식과 연구의 축적이 가장 초보적인 수준이다. 모두 돈 버는 데만 급급했지 이 지역을 연구하고 문화를 이해하는 데는 별 관심이 없었다.

지역전문가 이제라도 키워야

탈레반 인질 사태만 봐도 해당 지역에 대한 전문가가 거의 없어서 초보적인 정보 취득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현지 말을 하는 사람은 물론 전통적 문화를 이해하고 유목 부족의 구조와 탈레반 내부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한 뒤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인력을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다행스럽게도 9·11사태 이후 서구의 관점에서 벗어나 우리의 시각으로 세상을 보려는 강한 지적 움직임이 확산되는 중이다. 21세기의 진정한 글로벌 전략을 위해서는 다양한 문화권에 대한 지식의 하부구조를 튼튼하게 갖춰야 한다.

지역별 전문가를 양성하는 일에 지금부터라도 매진해야 한다. 해외지역연구원 같은 국책 전문연구기관을 설립하는 방안을 이번 일을 계기로 적극 검토할 만하다.

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한국중동학회 차기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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