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든 량차오웨이, 힘 빠진 스릴러…‘상성’

  • 입력 2007년 5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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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 와인, 그리고 밤. 이들이 만들어내는 향연은 홍콩이란 도시, 그리고 그 안에 사는 건조한 영혼들을 위한 일종의 세레나데가 아닐까. 그래서 31일 개봉하는 영화 ‘상성’에 ‘상처받은 도시’라는 부제가 달려 있는지도 모른다.

영화에선, 그러나 곧 비명과 함께 혈흔이 등장한다. 불안감이 감도는 분위기 속에서 등장한 두 주인공인 형사 유정희(량차오웨이·梁朝偉)와 아방(진청우·金城武)은 사건 해결을 위해 분주하게 움직인다.

영화는 초반부터 두 인물을 갈라놓는다. 용의자를 무자비하게 때리는 유정희는 ‘썩소(썩은 미소)’가 어울리는 비열한 캐릭터. 반면 늘 술병을 입에 달고 사는 아방은 거칠지만 인간적이다. 자신의 애인이 자살한 광경을 목격한 이후 그는 충격으로 경찰복을 벗고 사설탐정으로 살아간다.

선과 악이 어느 쪽인지 판단될 때 쯤 핵심 사건이 터진다. 홍콩 갑부인 유정희의 장인과 그를 돌보는 집사가 처참히 살해된 것. 사건을 맡은 유정희의 태도는 의외로 담담하다. 그의 아내 숙진은 “범인은 우리가 아는 사람”이라며 아방에게 사건을 의뢰한다.

영화 ‘상성’이 가진 특징은 바로 초반에 범인을 노출시킨다는 점이다. 즉 살인 사건의 핵심을 ‘누구(주체)’가 아니라 ‘왜(이유)’에 맞춘 것. 감독 마이자오후이(麥兆輝)는 홍콩에서 한국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식상한 추리극에서 벗어나고 싶었다”고 말했다. 영화는 그 범인을 유정희라 잠정 결론을 내린다. 아방의 모습이 대부분 전체 샷에 담긴 것과 달리 유정희는 얼굴 클로즈업 샷으로 나타난다. 마치 “난 다 알고 있다”라는 듯한 여유로움, 냉정함 등 그는 관객들에게 고스란히 노출돼 있다.

이러한 감독의 시도는 무모한 느낌도 든다. 영화가 끝나기 직전 ‘왜’에 대한 설명은 반전과 더불어 10분 정도로 요약돼 나타나지만 100분을 기다린 관객으로서는 충격적이기보다 무덤덤하다. 범인이 노출된 이상 반전 역시 ‘그렇구나’ 수준.

감독의 주제의식은 선과 악에 대한 결론을 명확하게 짓지 않아 난해하게 다가온다. 감독은 범인이 살인을 저지를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 인간적 동의를 구하려 한다. 그러나 처참한 살해 장면을 본 관객들이 범인의 고해성사를 얼마나 인간적이라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보다 유정희, 아니 중년이 된 량차오웨이에 대한 연민이 더 클 것이다. 차가운, 야비한 악역으로 변신하기 위해 애쓰는 량차오웨이를 보면 ‘이제 량차오웨이도 늙었구나’라는 영화 밖 잡생각에 사로잡히기 때문이다. 남자라면 한번쯤 술잔을 기울여 보고 싶은, 여자라면 한번쯤 좋아해 보고 싶은 배우이기에 그의 악랄한 연기도, 얼굴의 주름도 낯설다.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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