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한석희]‘미-중 대화’가 한국외교에 주는 교훈

  • 입력 2007년 5월 26일 03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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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제정치에서 회자되는 주요 개념 중의 하나는 ‘헤징(hedging)’이다. 헤징은 상대방의 의도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는 경우 서로 다른 정책(또는 전략)을 동시에 추진함으로써 자국의 안보와 안정을 도모하는 행위로 정의할 수 있다. 단순화해서 설명하면 자국의 안전을 위한 보험행위이다.

美-中사안별로 갈등-협력 유지

상호적(reciprocal) 헤징이란 중국과 미국처럼 쌍무적인 관계를 설명하는 경우에 자주 사용된다. 예를 들어 냉전이 종식된 이후 중국과 미국은 정치 안보상의 민감한 문제에 대해서는 갈등하면서도 경제처럼 지속적인 협력이 필요한 부분에서는 긍정적인 교류를 지속하는 이중적인 성격을 보였다. 전문가들은 중국과 미국이 양자 관계를 이렇게 복잡하게 만들어 갈 수밖에 없는 원인을 상호적 헤징으로 설명한다.

22, 23일 이틀간 미국 워싱턴에서 개최된 중-미 간 경제전략 대화는 헤징의 대표적인 경우다. 상호 경제 협력만이 공동의 생존과 발전을 보장할 수 있다는 취지에서 시작된 중-미 경제전략 대화는 세계 최강의 경제 대국과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부상하는 경제 발전국이 만나 상호 경제 발전을 협의한다는 점에서 세계경제에 상당히 긍정적인 의미를 갖는다.

양국은 환율 및 무역 불균형과 같은 쟁점에 대해서는 첨예하게 대립하면서도 중국 내에서의 금융서비스 확대라든지, 항공 여행 산업 확장, 에너지 환경 분야에서의 협력 등에 대해서는 별다른 이견 없이 합의에 도달했다. 갈등과 협력의 발전적 헤징을 이루었다는 점에서도 긍정적인 평가를 내릴 수 있다.

미국과 중국의 대표단을 이끌었던 헨리 폴슨 미 재무장관과 우이 중국 부총리가 협상 과정에서 자국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치밀한 전략을 바탕으로 시도했던 갈등과 협력의 설전도 인상적이었다.

폴슨 장관은 중국을 ‘세계경제의 리더’라고 치켜세우면서도 대중 무역적자의 급증에 따라 미국 내 ‘반중(反中) 감정이 위험수위’에 올랐고 ‘백악관의 인내심도 한계’에 도달했다면서 중국을 압박했다. 우 부총리도 위안화 평가절상 문제에 대해서는 “노력하겠다”는 자세로 예봉을 피해 가면서 “통상마찰을 정치문제화하지 말라”는 따끔한 경고로 미국의 압박에 응수했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상대방에 대해 갈등과 협력을 병행하는 두 강대국은 공교롭게도 한국의 평화와 안전, 그리고 미래의 발전에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당사자이기도 하다.

미국은 최근 10년 동안 한국과의 관계가 좀 소원해지긴 했지만 전통적인 안보 동맹 관계의 바탕 위에서 자유무역협정(FTA)까지 성사시켰다. 한국의 안전 보장과 경제 발전에 가장 중추적인 동반자이다.

또 중국은 경제적 급부상을 발판으로 한국 경제 발전의 엔진 역할을 하면서 북한 문제 해결에 있어서도 든든한 후견인으로서의 위상을 담당했다. 한국의 미래 발전에 없어서는 안 될 이익상관자이다.

등거리 정책으로 국익 챙겨야

문제는 한국이 두 강대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는 것이 국익에 가장 적합한가 하는 점이다. 하나의 강대국과의 관계를 강화하기 위해 다른 강대국과의 관계를 희생하는 정책은 국익에 가장 치명적인 손실을 가져온다. 미국 중국과 모두 적절하고 적당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각자의 장점을 활용해 관계를 강화해 가는 전략이 최선의 방법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과는 동맹적 안보 관계를 강조하고 중국과는 경제적 동반자 관계를 강조하면서 등거리식 외교를 펼치는 이중적(dual) 헤징을 합리적인 대미, 대중 정책으로 구체화해야 한다.

한석희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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