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하종대]“시신만이라도…”애타는 골든로즈호 가족들

  • 입력 2007년 5월 25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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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님은 평소 6개월이나 1년에 겨우 한 번씩 집에 들르셨어요. 3년 만에 오신 적도 있어요. 하지만 가족보다 더 가까이 지내던 선원들과 마지막 순간을 함께하셨으니 여한은 없을 듯합니다.”

12일 골든로즈호 침몰사고로 숨진 선장 허용윤(58) 씨의 아들 태복(29) 씨는 23일 아버지의 빈소가 차려진 중국 산둥(山東) 성 옌타이(煙臺) 도심 외곽 장례식장에서 이렇게 말하며 고개를 숙인 채 연방 흐느꼈다.

시신 인양이 장기화되면서 옌타이 항에 남은 유가족들은 갈수록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 눈은 초점이 흐리고 머리는 푸석한 데다 얼굴은 갈수록 꺼칠해져 언뜻 보면 마치 실성한 사람 같은 이가 많다. 식사 때가 아니면 두문불출이다. 사람을 만나도 좀처럼 입을 열지 않는다. 위로의 말조차 건네기 미안할 정도다.

특히 실종된 아들(하지욱·20·2등 기관사)의 시신도 인양하지 못한 하경헌(53) 씨는 수염이 덥수룩하다. 그는 사고 소식을 들은 뒤 수염을 한 번도 깎지 않았다.

“군 대체 복무를 하겠다며 배를 타겠다고 했을 때 말리지 않은 게 한이 됩니다.”

하 씨는 자신을 탓했다. “딸 둘을 낳은 뒤 6년 만에 어렵게 얻었는데….” 그래서 더욱 애지중지하며 키운 아들이다. 대를 이어야 한다는 ‘고루’한 생각은 없지만 그는 이번 사고로 대가 끊겨 버렸다.

“규용(44·1등 기관사)이는 아버지 얼굴도 생각이 안 날 거예요.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거든요.” 사실상 아버지 구실을 하며 동생을 돌봐 온 형 임규성(48) 씨는 마치 아들을 잃은 듯한 심정이다.

사고가 발생한 지 벌써 13일이 지났다. 유가족들은 ‘사고 선박에서 탈출해 살아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한 가닥 희망조차도 접은 지 이미 오래다.

유가족의 마지막 바람은 시신이라도 빨리 수습해 합동장례식을 치르는 것이다. 그러나 이 작은 바람도 쉽게 이뤄질 것 같지 않다. 선체는 발견됐지만 시신 인양이 쉽지 않다.

실의와 절망에 빠진 유가족에게 조그만 위로라도 될 수 있도록 정부와 선박회사가 시신 인양에 최선을 다해 주길 기대한다.

―옌타이에서

하종대 베이징 특파원 orion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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