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本報 독자인권위 좌담]김승연 회장 보복폭행 보도와 인권

  • 입력 2007년 5월 24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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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보 독자인권위원회 윤영철 위원, 김일수 위원장, 양우진 황도수 위원(왼쪽부터)이 22일 동아미디어센터 회의실에서 ‘김승연 회장 보복 폭행 사건 보도와 인권’을 주제로 토론했다. 김재명  기자
본보 독자인권위원회 윤영철 위원, 김일수 위원장, 양우진 황도수 위원(왼쪽부터)이 22일 동아미디어센터 회의실에서 ‘김승연 회장 보복 폭행 사건 보도와 인권’을 주제로 토론했다. 김재명 기자
《언론의 적극적인 보도가 자칫 묻혀 버릴 수도 있었던 재벌그룹 회장의 보복 폭행 사건을 규명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긍정적 평가가 나온다. 반면 실체가 확인되기도 전에 언론이 너무 앞서 나가며 선정적 상업적으로 접근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본보 독자인권위원회는 22일 본사 회의실에서 ‘김승연 회장 보복 폭행 사건 보도와 인권’을 주제로 좌담회를 열었다. 김일수(고려대 법대 교수) 위원장과 양우진(영상의학과 전문의) 윤영철(연세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황도수(변호사) 위원이 참석했다.사회=송영언 독자서비스센터장》

―보도의 긍정적 부정적 측면에 대해 살펴보지요.

▽윤영철 위원=범법행위에 대한 언론의 고발은 당연하지만 전형적인 ‘국민정서법’에 호소하는 방식으로 보도하지는 않았는지 되짚어 봤으면 합니다. 재벌의 도덕성을 앞세우는 국민정서와 조직폭력과 술집이라는 상업성을 고루 갖추는 등 흥행요소가 맞물리면서 언론이 과도하게 파고들다 보니 인권 문제에 소홀했던 부분도 관찰됩니다.

▽김일수 위원장=자칫 은폐될 수도 있었던 범죄를 언론이 공론화해 법의 지배 위에 세웠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합니다. 하지만 집중적인 보도가 장기화되면서 ‘재벌은 나쁘다’는 식의 대중적 편견을 불러왔다는 지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회적 편견은 국민정서를 개선하기는커녕 고정화하고 악화하기 때문입니다.

▽양우진 위원=역차별도 문제였습니다. 처음에는 피해자였던 김 회장 부자가 보복 폭행에 나서면서 가해자로 바뀌었습니다. 그런데 가해자의 측면만 지나치게 강조되면서 피해자 측면은 묻혀 버렸습니다.

▽황도수 위원=처음부터 진실을 밝히고 사죄하는 태도를 보였더라면 쉽게 가라앉았을 텐데 공인인 재벌총수가 거짓말을 하고 범죄를 완강하게 부인하다가 국민정서를 민감하게 건드린 셈입니다. 언론이 지나치게 앞서 간다는 생각도 들기는 하지만 기본적인 역할은 제대로 했다고 봅니다. 평범한 옆집 사람이었다면 보도가 계속될 까닭이 없었겠지요.

▽윤 위원=김 회장 아들에 대한 술집 종업원들의 폭력이나 동원한 주먹에 의한 김 회장의 폭력이나 같은 폭력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강자인 재벌총수에 대한 분노만 터져 나왔을 뿐 먼저 폭력을 휘두른 종업원들은 ‘파리 목숨보다 못했습니다’ 식의 발언까지 소개되면서 약자로 미화되는 등 판단마비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양 위원=폭행당하는 현장에서는 김 회장의 아들 역시 ‘파리 목숨’이 아니었을까요. 어느 신문에선가 술집 종업원들을 ‘대졸 이상 학력을 가진 엘리트’라며 조폭도 범죄자도 아닌 듯 보도했던데 좀 황당했습니다.

▽김 위원장=같은 폭력이라도 보복폭행은 법의 권위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범죄행위이므로 단순폭행과는 성격을 달리합니다. 이런 배경을 이해시키려는 노력보다는 재벌의 부도덕성만 강조하는 인상을 주고 말았습니다. 결국 김 회장으로서는 많은 부분을 잃게 됐고, 나아가 다른 재벌그룹 역시 선의의 피해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재벌총수가 기업을 지배한다는 일반화의 오류를 범한 결과 한화의 사옥과 로고까지 화면에 등장했으니 일반투자자인 주주들이 이의를 제기하기에 충분한 사유가 되지는 않았을까요.

▽윤 위원=개인이냐 집단이냐에 대한 혼선도 관찰됩니다. 국민정서에 편승해 김 회장을 곧 한화그룹과 동일시하고 나아가 다른 재벌로까지 확대하는 양상으로 번졌거든요. 반(反)재벌 정서를 부추기는 소재를 좇기만 했으니 언론의 사회적 책임에 서툴렀다고 봅니다.

▽황 위원=범죄 보도가 여론재판으로 흐르면서 무죄 추정의 한계가 혼란스러울 정도였습니다. 이런 선정주의가 자칫 재판에도 영향을 미치는 수준은 아닌지 깊이 고민할 대목이라고 봅니다.

―범죄사건 보도의 바람직한 방향에 대해 말씀해 주시죠.

▽양 위원=요즘은 어느 신문이나 다 똑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신문도 상업성을 무시하기는 어렵겠지만 좀 더 쿨하고 침착한 방향으로 보도의 차별화를 시도할 수는 없을까요.

▽황 위원=실정법상 문제되지 않는다고 마구 보도해서는 안 되겠지요. 여론을 어떤 방향으로 형성하느냐 하는 의제 설정이 언론의 책임이라면 좀 더 긴 안목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국민의식의 성숙을 위해 고민하면서 사건을 다뤄 주기 바랍니다.

▽윤 위원=왜 우리 사회에 폭력이 횡행하게 됐는지, 술자리 문화와 폭력의 연계성은 없는지, 공권력에 호소하지 않고 왜 폭력을 동원했는지 등 좀 더 깊이 있는 심층보도가 눈에 띄지 않아 아쉬웠습니다.

▽김 위원장=하루만 참았다가 다루면 좋았을 텐데 섣불리 가불(假拂)해서 보도하다 보니 오보가 나오고, 결과적으로 피의자가 법적 대응에 심각한 방해를 받게 됩니다. 절차를 무시하고 흐름을 왜곡하는 앞지르기 식 보도관행은 선정주의에 물든 타블로이드 옐로페이퍼에서나 볼 수 있는 모습이 아닐까요.

정리=김종하 기자 1101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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