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훈련 추락사 人災였나…사다리차 와이어 교체 규정도 없어

  • 입력 2007년 5월 19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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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복을 빕니다” 17일 소방안전교육을 체험하던 학부모들이 고가 사다리차에서 추락해 숨진 사고현장 주변에 누군가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18일 두 개의 화분을 가져다 놓았다. 김재명  기자
“명복을 빕니다”
17일 소방안전교육을 체험하던 학부모들이 고가 사다리차에서 추락해 숨진 사고현장 주변에 누군가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18일 두 개의 화분을 가져다 놓았다. 김재명 기자
현재 전국의 소방서들이 사용 중인 고가사다리차 10대 중 7대가 안전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본보 취재 결과 일본이나 선진국의 소방 당국은 고가사다리차의 와이어를 사고 유무나 마모 상태와 상관없이 6년에 한 번씩 무조건 교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기준을 적용할 경우 국내 고가사다리차의 209대 중 150대(71.8%)가 당장 와이어를 교체해야 하는데도 국내 소방서는 그냥 사용하고 있다.

소방방재본부의 한 관계자는 “고가사다리차가 도입된 1970년대 이래 와이어가 끊어진 적은 한 번도 없었고 이런 일이 생길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며 “원묵초등학교 사고가 나서야 와이어에 대한 규정이나 점검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고 털어놓았다.

▽‘안전의 보루’, 소방서가 안전에 무신경=일본 등과 달리 한국 소방 당국은 현재 고가사다리차 자체에 대한 내구연한만 12년으로 설정해 놓았다. 와이어를 비롯한 주요 부품에 대해 내구연한은 없는 상태다. 와이어 관련 점검 규정도 없다.

와이어는 도르래 원리를 이용해 고가사다리차 ‘붐대’의 상하 이동을 가능하게 해 주며 구조대의 무게중심을 잡아 주는 역할을 하는 ‘생명줄.’

그런데도 소방 당국은 관련 내구연한과 점검 기준도 마련하지 않았다.

용인대 경호학과 김태환(방재학) 교수는 “일본 소방 당국은 1년에 한 번씩 진행하는 정기검사에서도 와이어에 대한 탄력과 강도를 정밀검사한다”며 “이때는 드럼 안에 들어 있어 평소에는 안 보이는 부분에 대한 정밀검사도 포함된다”고 말했다.

소방방재청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209대의 고가사다리차 중 150대가 도입된 지 6년 이상 된 차량이다. 소방방재청은 이 중 몇 대의 차량에서 와이어가 교체됐는지도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했다.

이번 사고가 난 차량이 소속돼 있는 서울소방방재본부의 경우도 총 29대의 고가사다리차를 보유 중인데 이 중 21대가 6년 이상 된 차량이다. 이 가운데 와이어가 교체된 차량은 눈으로 보이는 부분에서 결함이 발견된 2대뿐이다.

전문가들은 인명구조 장비의 핵심 부품이 이처럼 소홀히 관리됐던 점을 감안할 때 화재진압 현장이나 이번 원묵초등학교 같은 안전교육 현장에서 언젠가는 터질 사고였다고 분석하고 있다.

▼사고 목격 초등생들 ‘외상 후 스트레스 징후’▼

눈앞에서 끔찍한 추락 사고를 본 서울 중랑구 원묵초등학교 학생들이 ‘외상후 스트레스 징후’를 보이고 있다.

18일 오전 원묵초교는 사고로 인한 충격 탓에 4학년 3반 학생은 9명이나 결석했고 4학년 전체적으로는 15명이 학교에 나오지 못했다.

학교는 학교보건진흥원 주관 아래 사고를 당한 학부모가 속한 4학년 3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시간가량 심리치료를 실시했다.

외상후 스트레스장애란 화재, 자동차 사고 등 신체적인 손상 및 생명을 위협하는 심각한 상황에 직면한 후 나타나는 정신적인 장애가 1개월 이상 지속되는 질병.

서울시교육청은 19일부터 서울 원묵초교 보건실에 소아정신과 전문의 2명을 배치해 학생들을 치료받게 하고, 21일 청소년상담센터 전문상담교사 12명을 파견하기로 했다. 또 22일 전교생을 대상으로 선별검사를 실시하기로 했다.

학교 측은 학생들이 안정을 되찾도록 19일 하루 수업을 하지 않을 방침이다.

또 교육청은 18일 소방훈련 사고로 학부모들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한 원묵초교의 교장에 대해 관리감독 소홀의 책임을 물어 직위해제했다고 밝혔다.

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김현지 기자 nuk@donga.com

신수정 기자 cryst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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