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私學 빼앗는 임시이사’에 제동 건 상지대 판결

  • 입력 2007년 5월 17일 23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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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대법원은 학내 문제로 10년 동안 임시이사 체제로 운영됐던 상지대 이사회가 2003년 12월 설립자인 김문기 전 국회의원의 의견을 듣지 않고 정(正)이사를 선임한 것은 무효라고 확정 판결했다. 교육의 공공성이 중요하더라도 학교법인의 자주성을 침해하는 수준이 돼선 안 된다는 이유에서다.

상지대 임시이사들은 당시 임시이사 파견 사유가 해소되자 변형윤 서울대 명예교수, 박원순 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 등 9명을 정이사로 선임했다. 임시 관리자들이 설립자한테서 사학 재단을 빼앗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대법원은 국가가 파견한 임시이사가 학교법인의 정체성(正體性)까지 뒤바꾼다면 위헌이 될 수 있음을 밝힌 셈이다.

이번 판결은 구(舊)사학법에 따른 심판이지만 최근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이 제기돼 있는 개정 사학법에 던지는 시사점이 더 크다. 대법원은 어제 판결과 개정 사학법의 위헌 가능성을 연계하지 말라고 덧붙였지만, 개정 사학법은 개방이사제를 통해 사학의 정체성까지 흔들 우려가 높은 법이다. 국가권력이 사학의 자율성, 나아가 사유재산권을 침해할 수 있는 길을 터 놓은 것이다.

개정 사학법에 따르면 개방이사가 고의로 분란(紛亂)을 일으켜 국가가 임시이사를 파견하도록 유도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분쟁이 해결돼 사학이 정상화되더라도 정이사를 ‘재산 출연자나 기여자, 학교운영위원회 대학평의원회의 의견을 들어 관할청이 선임하도록’ 명시하고 있어 사실상 국가가 사학의 경영권을 좌우할 수 있다. 전국의 사학들이 개정 사학법의 재개정을 강력히 요구하고, 한나라당이 이를 최대 입법과제로 삼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런데도 노무현 대통령은 한나라당이 사학법을 핑계로 다른 민생법안의 발목을 잡았다며 이를 고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이야말로 개정 사학법의 위헌적 독소조항을 재개정하는 결자해지(結者解之)부터 해야 마땅하다. 대법원의 어제 판결에 이어 헌재도 정치권의 눈치를 보지 말고 개정 사학법의 위헌 여부를 조속히 결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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