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90서태지 시대의 ‘컴백홈’

  • 입력 2007년 5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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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인터넷 1980∼1990년대 복고 트렌드

“유 머스트 컴백홈!(You must come back home!)”

1995년 이 가사를 랩으로 읊조리던 서태지는 당시 청소년과 ‘신세대’로 불린 젊은층의 우상이자 문화 아이콘이었다. 이들이 예전에 자신들이 향유했던 1980년대 중반 이후 1990년대 대중문화에 다시 관심을 기울이면서 ‘8090’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20대 후반부터 30대에 이른 사람들이다. 386이 주도했던 ‘7080’과 차별화되는 복고 바람이다.

○ 대중문화계의 새 화두, ‘8090’

케이블채널 tvN ‘박수홍의 섬싱뉴’(화 오후 11시)의 ‘섬싱뉴 8090’ 코너는 ‘8090’ 문화를 당시 영상과 함께 소개한다. 6일에는 유행어를 낳은 TV 광고가, 15일에는 인기 만화 주제가와 외화 시리즈가 나왔다. 조상범 PD는 “두 달 전에는 1980년대 ‘19금’ 성인영화를 회고하는 내용을 내보냈는데, 이 프로그램의 최고 순간시청률을 기록했다”고 말했다.

SBS 러브FM ‘윤지영의 러브FM 8090’(매일 오전 2시)과 파워FM ‘김창렬의 올드스쿨’(매일 오후 4시)도 ‘8090’ 문화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이다. 서태지와 아이들, 신승훈 등 1990년대 톱스타들의 노래를 자주 방송한다.

SBS 파워FM ‘하하의 텐텐클럽’(매일 오후 10시)도 매주 금요일 ‘어게인8090’ 코너를 마련했다. 당시 유행가를 들려주며 ‘80년대 홍콩영화붐’ ‘90년대 추억의 책받침 스타’ 등을 주제로 진행자와 패널이 이야기를 나눈다. 김훈종 PD는 “이 코너의 청취자 참여가 평소보다 두 배가량 높다”고 밝혔다.

애니메이션에도 케이블채널 챔프의 ‘달려라 하니’ ‘드래곤볼’ 등 ‘8090’ 작품이 주목받는다. 자정에 방영하는 ‘달려라 하니’의 연령별 시청점유율은 30대에서 가장 높게 나타나기도 했다.

인터넷에서는 손수제작물(UCC)을 중심으로 ‘8090’ 바람이 일고 있다. 네이버의 사진모음서비스인 네모에는 ‘90년대 드라마’ 사진을 모은 게재물의 조회수가 58만 건을 기록하기도 했다. 1980년대 청소년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모은 ‘추억의 WWF 스타’를 게재한 블로그가 주목 받았다.

이경률 홍보팀 과장은 “‘8090’ 콘텐츠는 인터넷 주 사용층인 20, 30대가 추억을 되살리며 공감하는 새로운 UCC 트렌드로 각광받고 있다”고 말했다.

○ ‘8090’은 ‘포스트 386’의 새 바람

전문가들은 서울 올림픽이 열린 1988년과 외환위기가 빚어진 1997년 사이에 10대와 20대를 보낸 세대가 ‘8090’ 바람을 주도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들의 특징은 물질적 풍요로움, 영상감각, 국제화, 탈이념으로 요약된다. 88 서울 올림픽과 해외여행 자유화 조치로 국제화 감각을 익혔고 1980년대 경제 성장에 힘입어 물질적으로 풍요로움을 누렸다.

컬러TV와 컴퓨터의 대중화로 영상에도 친숙하며 냉전시대의 종식과 더불어 이전 ‘386세대’와 달리 이념 논쟁에서 벗어나기도 했다.

특히 당시 이들이 즐긴 대중문화는 대형화 및 산업화 추세를 탔으며 이것이 현재 ‘8090’ 복고 바람의 기폭제가 되고 있다.

서태지와 아이들, 김건모, 신승훈 등 밀리언셀러 스타들이 예사롭게 나왔고 ‘H.O.T.’ 등은 본격적인 ‘아이돌 문화’를 확산시켰다. 역대 시청률(AGB닐슨미디어) 톱3를 기록한 KBS2 ‘첫사랑’(1997년), MBC ‘사랑이 뭐길래’(1992년), SBS ‘모래시계’(1995년)가 방영된 것도 이때다.

조한혜정(사회학) 연세대 교수는 ‘8090’ 바람에 대해 “‘386’과 함께한 노무현 시대의 마감을 앞두고 그 다음 세대가 사회와 문화의 새로운 주체로 부상하는 현상”으로 분석했다.

문화평론가 김지룡 씨는 “경제적 여유가 생기고 사회 활동으로 경쟁에 시달리는 현실에서 벗어나려는 30대가 복고문화의 중심으로 떠오르는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라며 “유행 속도가 빨라지면서 상대적으로 불과 10여 년 전인 ‘8090’ 문화가 주목받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남원상 기자 surreal@donga.com

▼8090, 7080과 무엇이 다른가▼

2000년대 초반 복고바람으로 등장한 ‘7080’은 1970, 80년대 학번인 386세대가 향유했던 문화다. 386세대가 사회 변화의 바람을 주도하면서 학창시절 즐겼던 대중문화를 부활시켰던 것이다. 통기타 가수들이 대거 참여한 포크송 페스티벌을 비롯해 대학가요제 출신 가수와 히트곡들이 유행했다. 운동권 가요의 대중화 등도 ‘7080’ 바람의 한 현상이었다.

‘7080’은 최근 구매력을 바탕으로 대중문화에서 뮤지컬이나 클래식으로 향유 문화를 옮기는 양상을 띠고 있다. 뮤지컬 ‘맘마미아’를 기획한 신시컴퍼니의 최승희 팀장은 “40대가 즐겨 듣던 아바의 노래로 꾸민 무대여서 ‘7080’ 관객이 전체 객석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며 “뮤지컬 ‘달고나’ ‘와이키키 브라더스’ 등 386세대를 겨냥한 공연이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라고 말했다.

‘8090’은 랩과 서태지로 상징된다. 인터넷 세대이자 감수성이 예민한 이들은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을 뚜렷이 구분하며 소소한 일상과 삶의 질에 관심이 높다. 386세대가 집단적이고 목표지향적인 ‘하드파워’인 데 비해 ‘8090’은 개인주의적이고 문화중심적인 ‘소프트파워’로 분석되기도 한다.

SBS 구경모 총괄PD는 “‘8090’은 상업 문화가 급성장한 시기의 문화를 향유했기 때문에 ‘7080’에 비해 대중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다”며 “TV, 라디오 등 올드미디어와 인터넷 등 뉴미디어를 고루 즐긴다는 점도 다르다”고 말했다.

남원상 기자 surre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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