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육정수]‘잘사는 북한’

  • 입력 2007년 5월 12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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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하게 뚫린 도로와 고층빌딩, 도심 아파트단지, 지하철역 구내, 깔끔하게 차려입은 가족의 나들이, 동물원과 스케이트장, 모피코트를 입은 여인들과 패션쇼…. 누가 이곳을 헐벗고 굶주리는 ‘동토(凍土)의 왕국’ 수도 평양으로 볼 것인가. 과연 이곳이 우리에게 쌀과 비료, 의약품을 수시로 받아야만 연명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란 말인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북한의 진정한 모습과는 거리가 한참 멀다. 통일부의 통일교육원이 만든 화보집 ‘사진으로 본 북한 주민의 생활’을 훑어본 소감이다.

▷이 화보집은 전자책(ebook)으로 만들어져 통일부 ‘사이버 통일교육센터’ 인터넷 홈페이지(www.uniedu.go.kr)에 올라 있다. 도시와 농촌 경제, 학교생활, 명절, 일상생활 등 네 부분으로 나뉘어 간단한 설명이 붙어 있다. ‘이렇게 잘사는 북한을 우리가 도와줘야 하나’라는 의문이 들게 한다. 이런 ‘평화로운 나라’가 핵무기나 미사일을 개발하는 나라일까 싶다. 북한의 선전 자료를 그대로 옮겨 놓은 통일교육원 사람들의 생각을 이해하기 어렵다.

▷각급 학교의 고급 시설과 방과 후의 다양한 예능교육 모습, 서양인에 의한 외국어 실습교육 장면, 기독교 천주교 불교의 종교활동 소개에 이르면 인식의 혼란이 절정에 이른다. 북한이 ‘주체사상’이란 종교만을 일방적으로 세뇌하는 곳이 아니라 창의력과 다양성을 존중하고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는 민주사회라고 착각할 정도다.

▷통일교육원 관계자는 ‘공신력 있는 사진’만을 싣다 보니 그렇게 됐다고 변명하지만 국제인권단체 ‘프리덤하우스’가 지목한 ‘최악의 인권 탄압국’의 실상을 외면한 이유로는 군색하다. 북이 보여 주고 싶은 것만을 골랐다고 말하는 편이 솔직한 태도일 것이다. 전북 임실 관촌중학교 학생들이 뼈만 앙상한 북한 어린이들과 국경지대를 유랑하는 ‘꽃제비’ 소년의 영상을 보고 놀라워했다고 한다. 전교조가 빨치산 행사참가 교육을 했던 바로 그 학교다. ‘민족애(民族愛)’도 좋지만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 주는 통일교육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육정수 논설위원 soo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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