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연히 나타난 ‘명사수’…경찰 사격천재를 몰라 봤다

  • 입력 2007년 5월 10일 18시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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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격천재를 몰라봤다.

최근 서울지방경찰청은 일부 체육고에서 편입생을 뽑는 과정에서 비리가 있다는 제보를 국가청렴위원회에서 넘겨받아 수사를 해왔다.

특히 경찰은 제보 가운데 지난달 20일경 사표를 낸 한 청와대 비서관의 딸이 부정 편입했다는 의혹에 수사를 집중해왔다.

인문계 고교에 다니던 A 양은 지난해 9월 '사격 특기생'으로 서울체고에 편입했다. 이전에 사격을 전혀 하지 않았던 그는 편입을 위한 실기시험인 '전문기능검사'에서 국가 대표 수준의 '놀라운' 점수를 기록했다. 체고는 중학생 때 전국대회에 출전해 입상한 경력이 있거나 실기시험에서 우수한 성적을 올려야 입학할 수 있다.

경찰은 A 양의 부모가 점수를 올려주는 대가로 교사에게 금품을 건넨 것으로 의심했다. "지난해 6월부터 3개월간 사격 연습을 해 실력으로 합격한 것"이라는 A 양 어머니의 설명은 오히려 경찰이 '뭔가 비리가 있다'는 확신을 갖도록 했다. 3개월 연습으로 국가대표 수준으로 사격실력을 갖추기는 불가능하다고 본 것.

반전은 지난달 30일 일어났다.

A 양이 대한사격연맹이 주최한 제23회 회장기 전국사격대회에 출전, '깜짝 놀랄' 성적을 거둔 것.

A 양은 이 대회 여고부 더블트랩(서서 날아오는 표적 2개를 동시에 맞춰야 하는 사격종목)에 출전해 개인전 우승을 차지했다. 120점 만점에 99점을 기록해 대회 신기록까지 세웠다.

지난해 도하 아시안게임에서 단체전 금메달, 개인전 동메달을 딴 한국 여자 클레이 사격의 간판선수인 이보나(26) 씨의 점수(98점)보다도 높았고, 일반부 여자 우승자와는 동점을 이뤘다.

서울시사격연맹 이관춘 부회장은 "이번 대회에서 처음 보는 선수였는데 정말 천재가 났다고 생각했다"며 "1992년부터 모든 종목의 채점방식이 전산화된 데다 더블트랩 종목은 표적물이 터져야 점수가 오르기 때문에 점수 조작은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사격선수들이 보통 초등학교 고학년 때 총을 잡는 것을 생각하면 A 양은 5년의 세월을 단숨에 뛰어넘은 것.

이 부회장은 "만약 A 양의 실력이 의심스러우면 이달 16일부터 열리는 제3회 경호실장기 대회에 와서 직접 경기를 지켜보라"고 덧붙였다.

경찰은 10일 경찰은 교사와 학부모 10여 명을 대상으로 계좌추적을 벌여 체육특기생 선발 과정에서 일부 금품이 오간 사실을 확인했지만 현재까지 A 양이 부정 편입했다는 증거는 없다고 밝혔다.

한편 A 양의 아버지는 이날 일부 언론에서 딸의 부정 편입 의혹을 보도한 것과 관련해 "어린 학생의 일생을 망치는 보도에 대해 법적 대응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재명기자 egij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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