컵라면 들어오자 “이제 살았구나” 대우건설 3명 내일 귀국

  • 입력 2007년 5월 10일 03시 01분


코멘트
“탕, 타당.”

나이지리아 공사현장을 방문 중이던 정태영(52) 대우건설 상무는 3일 오전 1시(현지 시간) 총소리에 잠을 깼지만 주변 마을에서 총기사고가 일어났으려니 생각하고는 다시 잠을 청했다.

하지만 25분 뒤 강한 폭발음과 함께 기관총과 소총 소리가 뒤섞이면서 주변은 온통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인질극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나이지리아 무장단체에 납치됐다가 135시간 만에 풀려난 정 상무와의 국제전화 인터뷰를 통해 납치 당시의 상황과 억류기간 중의 생활을 재구성했다.

리버스 주(州) 아팜 지역의 대우건설 화력발전소 공사 현장에 들이닥친 괴한은 30∼40명. 현장은 높이 4m의 이중 철책으로 둘러싸여 있었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괴한들은 초소의 현지인 군인 1명을 쓰러뜨리고 철문을 폭파한 뒤 거침없이 난입했다. 나이지리아 해군과 경찰 등 65명의 경비인력이 있었지만 야음을 틈탄 기습에는 역부족이었다.

현장에는 비슷한 모양의 숙소가 11개 동(棟)이나 있었지만 괴한들은 곧장 정 상무와 안종태(53) 전문위원, 하익환(50·현장소장) 부장의 숙소로 향했다.

차에 실려 30분 정도 끌려간 뒤 스피드 보트로 갈아타고 늪지대를 가로질러 1시간을 더 갔다. 정 상무는 지금도 그곳이 어디였는지 모른다.

은거지에 도착하자 일행은 휴대전화를 빼앗겼다. 괴한들의 지시로 하 부장이 “우리는 무사하다”고 보고한 뒤로는 외부로 연락할 길이 없었다.

카사바(아열대 지방의 관목식물) 뿌리로 만든 에바수프와 볶음밥을 먹으며 나흘을 보냈지만 기다리던 소식은 없었다. 설마 무슨 일이야 있겠느냐 싶었지만 점점 지쳐 갔다.

피랍 5일째인 7일 오후. 회사에서 보낸 컵라면과 옷가지가 들어왔다. 희망이 보였다.

“괴한 중 한 명이 ‘곧 석방될 거다’고 귀띔해 주더군요. ‘이제 살았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8일 오후 5시(한국 시간 9일 오전 1시). 현지 주정부가 보내 준, 창문을 천으로 가린 버스가 도착했다. 석방이었다. 정 상무 등 대우건설 피랍 임직원 3명은 11일 오전(한국 시간) 인천국제공항으로 귀국할 예정이다.

일단 납치사건은 종결됐지만 앞으로가 문제다. 언제든 재발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기동 주(駐)나이지리아 대사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최근 나이지리아 정치 상황이 불안정해지면서 한국 등 현지에 진출한 외국기업 근로자를 노린 범죄가 빈발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정부 차원에서 안전대책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기정 기자 koh@donga.com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