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멀고 ‘철없는’ 감각만… ‘마리 앙투아네트’

  • 입력 2007년 5월 10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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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앙투아네트 역을 맡은 커스틴 던스트. 사진 제공 소니픽쳐스릴리징브에나비스타영화
마리 앙투아네트 역을 맡은 커스틴 던스트. 사진 제공 소니픽쳐스릴리징브에나비스타영화
18세기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마리 앙투아네트. 어린 나이에 프랑스 부르봉 왕가의 루이 16세에게 시집온 공주, 그러나 베르사유 궁전에서 향락적인 삶을 살다 프랑스혁명 때 백성들에 의해 처형된 왕비… 이것이 세계사가 말하는 그녀의 모습이다.

이에 반해 17일 개봉하는 영화 ‘마리 앙투아네트’에서 그녀의 모습은 미시적으로 그려진다. 프랑스로 시집온 날 애완견과 헤어져 울음을 터뜨리는 어린 그녀. 2세를 낳아야 하지만 사랑이 감지되지 않는 불행한 부부생활에서 그녀는 1m 높이의 꽈리 모양 헤어스타일에 흡족해하고 “서민들이 왜 굶지요? 빵이 없으면 대신 케이크를 먹으면 될 텐데”라며 개념 없는 언행을 일삼는다.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로 유명한 여성 감독 소피아 코폴라는 그녀를 철없는 어린 소녀로 세밀하게 그려낸다.

그런데 문제는 영화 역시 철이 없다는 것. 감독의 손끝에서 빚어진 앙투아네트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비극의 주인공도, 사랑받지 못한 왕비도 아니다. 그저 21세기 감각적인 10대 소녀일 뿐. 무료함을 달래기 위한 향락 파티에서 도박을 즐기고 코카인을 흡입하는, 전형적인 미국 동네 클럽에 드나드는 10대의 모습 같다. ‘스파이더맨’의 여주인공 커스틴 던스트가 앙투아네트 역을 맡은 것도 그렇다. 할리우드 스타의 피가 끓고 있는 이 여배우의 모습은 연기력을 떠나 영화 내내 “정말 마리 앙투아네트 맞아?”라는 의문을 자아내게 한다.

물론 영화 속 프랑스 궁중 의상은 눈을 즐겁게 한다.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의상상을 받은 만큼. 하지만 이마저도 불안하다. 18세기에 핑크 스커트를 입고 핑크 구두를 신은 앙투아네트의 모습이나 ‘컨버스 운동화’가 카메라에 잡힌 것은 감독의 의도라지만 생뚱맞다. 물과 기름처럼 분리된 이 장면을 관객들이 이해해 줄지는 의문이다.

철없는 10대는 영화 후반부에서 변한다. 백성들이 왕궁에 쳐들어올 정도로 민심이 악화되자 철없던 앙투아네트는 “남편과 함께 남겠어요”라며 각오를 다진다. 무미건조하던 부부의 아침식사에 비장미가 감돈다. 조금 전까지 철없는 10대로 살았던 그녀가 단 몇 분 만에 철이 든 걸까? ‘클럽’에 있다 갑자기 베르사유 궁전으로 돌아온 왕비, 설마 감독은 ‘반전’이라 하진 않겠지.

영화 전반에 흐르는 음악도 수상쩍다. 시대적 배경과 무관한 모던 록 음악은 왜일까? 그럴 거면 아예 여성 틴 록 가수 에이브릴 라빈의 ‘걸프렌드’를 들려주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 “헤이 헤이 헤이 헤이 아이 돈트 라이크 유어 걸프렌드∼”라고 외치는 소녀의 모습, 역사는 없고 감각만 존재한다. 그것이 코폴라 감독이 바라보는 앙투아네트의 모습인가?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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