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서병훈]“정치학 교수 못해먹겠습니다”

  • 입력 2007년 5월 10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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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사람 만나기가 겁이 납니다. 만날 때마다 “누가 대통령이 될 것 같아요?”라고 묻는데, 여간 난감하지 않습니다. 전공이 아니라 잘 모르겠다고 말꼬리를 흐리다가, 끝내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점쟁이한테나 물어 보시죠”라고 대답합니다. 듣는 사람은 기분 나쁘겠지만, 그것이 솔직한 심정입니다. 옆방의 선거 전문가도 사정이 다르지 않습니다. 그 양반 역시 똑같은 대답입니다. 5년 전에도 그랬습니다.

한심한 정치학자들이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세계 어느 나라 선거판을 보더라도 우리처럼 돌발 변수가 많은 곳도 없는 듯합니다. 1년 내내 우위를 차지하던 후보가 선거 직전 예상치 못했던 한 방에 주저앉을 수 있는 곳이 바로 한국입니다. 열린우리당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도 그런 것 아닙니까. 누가 최종 승자가 되는지를 맞히는 일이 과학의 영역이 아닐 수도 있는 것, 이것이 한국 정치의 적나라한 현실입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올해는 참으로 유난스럽습니다. 올해 같은 상황은 보다 보다 처음 봅니다. 정치학의 기본 명제 자체를 비웃는 일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는 대충 어느 지역 출신이냐, 또는 진보냐 보수냐 하는 기준으로 사람을 판단했습니다. 앞을 예측하는 것도 어느 정도는 가능했지요. 그리고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후보자의 사람됨이었습니다. 천하를 들고 놓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인간적인 하자가 있으면 그것으로 선거는 끝이었습니다. 한국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힘이 바로 거기에 있었습니다.

이런 ‘난장판 정치’는 처음

그런데 올해 들어서는 이 만고불변의 법칙마저 사정없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여당 야당 가릴 것 없이 총체적으로 부서지고 깨지는 형국인데, 한마디로 아수라장입니다. 아무리 선거철이라고 하지만 이렇게 전방위에 걸쳐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을 벌이는 것은 사상 초유의 일입니다. 더 고약한 것은 그 싸움의 내용입니다.

우리나라 정당이 하루살이 신세를 면하지 못하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그래도 지금까지는 당을 깨는 사람들이 늘 조심스러워했습니다. 행여 여론의 질타를 받을까 노심초사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다릅니다. 명색이 집권당인데 탈당파와 분당파가 더 큰 소리를 칩니다. 무슨 대단히 의로운 일이라도 하듯 엄숙하기까지 합니다.

그동안 한국의 야당은 패자 승복이라고 하는 아름다운 전통을 이어 왔습니다. 당내 경선에서 불리하다고 해서 판을 깨는 것은 상상조차 못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한나라당의 대선 주자들은 걸핏하면 경선에 불참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습니다. 각개약진을 불사하겠다고 겁을 줍니다. 실제로 탈당까지 한 사람도 있습니다. 문명국가에서 이럴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정말 속이 상합니다. 그들 나름대로 믿는 바가 있다는 것입니다. 국민이 자기들과 한통속이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이기는 자의 손을 들어주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것이지요. 딴것은 몰라도 치사한 것은 용서하지 않던 과거의 그 국민이 아니라고 생각하니까 저렇게 당당한 것 아니겠습니까. 하기야 탈당을 하든 경선불복을 하든, 얼마든지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 아닙니까. 또 있습니다. 우리 국민의 정치적 건망증에 기대를 거는 겁니다. 아무리 패륜적 행동을 하더라도 몇 달만 지나면 깡그리 잊게 되리라는 겁니다. 그러니 일단 이기고 보자는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 국민이 이런 대접을 받고 살아도 되는 걸까요.

‘치사한 사람’ 국민이 심판을

미국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할 말이 많지요. 그래도 이것 하나는 인정해 주어야 합니다. 미국민은 자기가 불리하다고 당을 깨거나 판을 엎는 인간은 용서하지 않았습니다. 프로 야구의 배리 본즈가 홈런 신기록 달성을 눈앞에 두고 있지만 팬들은 시큰둥합니다. 그가 스테로이드라는 근육강화제를 썼다는 혐의 때문입니다. 정도를 벗어난 반칙 플레이에 대해서는 용서하지 않는 것, 이것이 미국 민주주의의 힘입니다.

정치는 그리 복잡하지 않습니다. 또 그래서도 안 되고요. 치사한 사람은 성공할 수 없다는 원칙만 확립해 주어도 정치는 편해질 겁니다. 그렇게만 되어도 정치학 교수가 이처럼 전전긍긍할 일도 없을 겁니다.

서병훈 숭실대 교수·정치외교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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