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교과서에 숨어있는 논술주제]속도-빠름과 느림

  • 입력 2007년 5월 8일 03시 01분


코멘트

[중앙 ‘문학’ 교과서, 최남선 ‘경부철도 노래’ 중]

과거에는 기업이 나쁜 소식에 대처하는 속도가 느릴 수밖에 없었다. 정보를 신속히 전할 수 있는 수단이라고는 전화뿐이었으므로, 경영자들은 종종 상황이 심각한 지경에 이르고 나서야 문제를 발견할 수 있었다. 또, 문제 해결에 나선 직원들은 필요한 정보를 찾느라 산더미처럼 쌓인 서류 뭉치와 씨름했거나, 일이 진행되는 상황을 알고 있는 누군가를 찾아 사내를 뛰어다녀야만 했다. 그리고 일단 늦게나마 불완전한 정보라도 얻게 되면, 다시 전화로 서로 의논을 하거나 팩스로 정보를 교환하곤 했다. 이러한 과정마다에 매우 많은 시간이 소모되었음은 물론이고, 결과적으로 곳곳에 흩어진 관련 정보들을 모아 전체적인 상황을 파악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했다.

[교육부 ‘국어(상)’ 교과서, 빌 게이츠 ‘빌 게이츠@생각의 속도’]

[TIP] 1814년 증기기관차 발명, 1897년 영국-프랑스 간 무선통신 성공, 1903년 최초의 동력 비행. 최남선이 감격한 것은 1905년 개통된 경부철도의 빠른 속도였는데, 이는 신문명의 도래를 알리는 상징이었다. 100년이 지난 지금, 사람들은 빛의 속도로 대화하고 정보를 수집한다. 신속한 정보처리 능력은 기업과 국가의 경쟁력을 좌우할 뿐 아니라, 기업체 직원과 국민, 곧 모든 사람들의 삶의 조건을 결정하고 있다.

이제 너는 차를 몰고 달려가는구나.

철 따라 달라지는 가로수를 보지 못하고

길가의 과일 장수나 생선 장수를 보지 못하고

아픈 애기를 업고 뛰어가는 여인을 보지 못하고

교통순경과 신호등을 살피면서

앞만 보고 달려가는구나.

너의 눈은 빨라지고

너의 마음은 더욱 바빠졌다.

앞으로 기름값이 또 오르고

매연이 눈앞을 가려도

너는 차를 두고

걸어 다니려 하지 않을 테지.

[두산 ‘문학’ 교과서, 김광규 ‘젊은 손수 운전자에게’]

[TIP] 유럽 곳곳에 철도가 부설되는 모습을 보고 독일의 시인 하이네는 ‘결과를 예상할 없고 예측할 수도 없는 엄청난 일이 일어났을 때 느끼는 그러한 무시무시한 느낌’을 언급했다. 그로부터 70여 년 후 타이타닉호가 침몰했다. 타이타닉호의 침몰은 빠른 속도에 대한 집착이 불러온 비극이다. 속도에 대한 강박증을 앓고 있던 한국에서는 성수대교가 붕괴했다. 우리나라의 시인은 앞만 보고 달려가느라 가로수와 과일 장수, 생선 장수와 애 업은 여인네를 보지 못하는 젊은 손수 운전자를 안타까워하고 있다. 우리는 빠른 속도를 얻는 대가로 생명과 다채로운 삶의 여정을 포기했는지도 모른다.

오늘날 인간의 삶에는 이른바 ‘조용한 혁명’이 일어나고 있다. 즉, 물질적 풍요와 생활의 안정을 1차적 관심사로 여기던 종래의 생활 방식에서 벗어나, 점차 ‘삶의 질’ 문제로 관심이 옮겨 가고 있다. [교육부 ‘윤리와 사상’ 교과서]

진행자 : 패스트푸드로 상징되는 바쁜 현대 사회에서도 음식만은 느긋하고 건강하게 즐기자는 슬로푸드 운동이 주부들 사이에서 확산되고 있습니다. 패스트푸드 대신 손이 많이 가는 전통 음식을 식탁에 올리고 채소 등을 손수 재배하는 주부들도 늘고 있습니다. (중략)[교육부 ‘국어(상)’ 교과서]

[TIP] 참살이(웰빙)의 일환으로 ‘느리게 살기 운동’이 조용히 일어나고 있다. ‘슬로푸드(slow food)’ 운동을 하는 주부에서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직장인, 도시를 떠나 시골로 가는 가족에 이르기까지, 개인이 추구하는 ‘느림’의 모습도 다양하다.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의 저자 피에르 상소는 느림을 삶의 선택에 관한 문제라고 했다. 이에 대해 철학 교수 김용석은 ‘깊이와 넓이 4막 16장’에서 빠름을 추구하든, 느림을 추구하든 그것을 하나의 인생관이나 세계관으로 틀 지우려 하지 말 것을 제언했다. 느림을 실천하는 사람들이나 학자들은 ‘네안데르탈인들의 능력에 비하여 조금도 다르지 않은 능력을 가진 인간들’을 통렬히 비판한 한 학자의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다.

최 강 KT캠퍼스 기획이사 최강학원 원장

전지용 최강학원 통합언어논술 대표강사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