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 떨어진 범여권 대선 전략 먹구름

  • 입력 2007년 5월 1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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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의 대선 불출마 선언에 비(非)한나라당 진영은 ‘멍한’ 기색이다.

정 전 총장은 그동안 대선후보 선호도 조사에서 1∼2%대의 낮은 지지율을 보였지만 △충남 공주 출신으로 ‘호-청(호남-충청)’ 연대를 통한 서부벨트 복원의 적임자 △서울대 총장을 지낸 경제 교육 전문가 △노무현 대통령과 차별화를 꾀할 수 있는 비(非)정치권 인사 등으로서 잠재력을 인정받아 왔다.

당장 정 전 총장과 손학규 전 경기지사 및 열린우리당의 기존 대선주자들이 참여하는 국민경선제(오픈 프라이머리)를 통해 ‘흥행’을 노리던 범여권 진영의 구상에 차질이 빚어질 것으로 보인다.

열린우리당 김영춘 의원은 “외부 전문가 그룹 중 손 전 지사와 어울릴 수 있는 사람을 찾아야 하는 부담이 생겼다”고 했다. 민병두 의원은 “후보 중심의 통합에만 매달릴 수는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통합신당모임은 이날 정 전 총장의 불출마 선언 이후 의원 전원회의를 열어 정 전 총장 불출마에 따른 대책 및 독자신당 창당 여부를 두고 격론을 벌였다. 모임 관계자는 “1일 다시 전원회의를 열겠지만 최악의 경우에는 일부 의원이 참여하지 않는 채 20명 미만의 의원으로 창당할 수도 있다. 그 경우 모임이 깨질 수 있다”고 말했다.

정 전 총장의 정치 불참 선언은 범여권의 다른 대선주자들의 향후 행보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손 전 지사가 주목된다.

정 전 총장이 정치 불참을 선언한 이날 손 전 지사는 지지모임인 ‘선진평화포럼’의 창립총회를 열고 독자적인 정치세력화에 나섰다. 포럼 발기인으로는 박형규 목사 등 종교인과 시인 김지하, 소설가 황석영, 만화가 이현세 씨 등 문화계 및 학계 인사 700여 명이 참여했다.

정치권에선 고건 전 국무총리와 정 전 총장이 잇따라 중도 하차하면서 손 전 지사가 중도개혁 노선의 ‘대표 주자’로 부상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손 전 지사가 정 전 총장과의 경쟁을 통해 지지율도 올리고, 탈당의 허물을 벗을 수 있는 기회를 상실했다는 점에서는 득보다는 실이 크다는 분석도 있다.

정 전 총장의 불출마로 충청 민심이 4·25 재·보궐 선거에서 당선된 국민중심당 심대평 의원에게로 쏠리고, 향후 대선구도에서 심 의원의 주가가 오를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정 전 총장이 불확실한 행보를 일찍 정리하면서 열린우리당 내 대선주자들의 발걸음도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한명숙 전 국무총리는 5월 중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할 것으로 알려졌다. 정 전 총장과 손 전 지사에 대해 미온적 태도를 보여 온 친노(親盧) 세력 내에선 한 전 총리와 김혁규 의원을 ‘대안’으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당 안팎의 ‘외부 선장론’ 때문에 속앓이를 한 정동영 김근태 전 의장도 대선 행보에 가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화보]고개숙인 정운찬, 불출마 회견장 이모저모

[동영상]정운찬 “대통령 될 자질과 능력 부족”

정용관 기자 yongari@donga.com

통합파 “닭 쫓던 개”… 한나라 “현명한 결정”

■ 정치권 반응

고건 전 국무총리에 이은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의 불출마 선언에 범여권에서는 “두 번이나 닭 쫓던 개 신세가 됐다”는 자조적인 말이 나왔다. 열린우리당의 최재성 대변인은 “정 전 총장의 경선 참여가 무산돼 아쉽다”면서도 당이 주장해 온 ‘대선 후보 중심의 통합론은 여전히 유효한 방법’이며 “열린우리당 의원들의 탈당 가능성도 더 없어졌다”고 말했다.

정 전 총장에게 가장 적극적인 구애를 보낸 통합신당모임은 “매우 안타깝다”는 대변인 논평을 낸 뒤 의원 전원회의를 열고 대책을 논의했다. 전병헌 의원은 “범여권이 중도개혁진영의 주자로 잠재력 높은 사람을 함부로 다뤄 이렇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민주당의 유종필 대변인은 “인물 중심의 정당은 위험하다는 사실이 다시 입증됐다”고 주장했다.

청와대는 공식 반응은 자제했으나 이날 ‘청와대브리핑’에 올린 글에서 “소신에 따라 자신을 던지는 일을 주저하며 계산만 하는 정치인들에게 국민은 박수를 보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한나라당 유기준 대변인은 “현명한 결정”이라며 “학문 연구와 교육에 전념하는 게 국가와 사회에 더 기여하는 길”이라고 논평했다.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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