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ST교수協 총장 불신임 움직임 파문

  • 입력 2006년 2월 23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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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들이 사실상 로버트 로플린 총장의 연임 반대 운동에 나서 파문이 커지고 있다.

이 대학 교수협의회(회장 강석중·姜錫重 신소재공학과 교수)는 22일 교내 터만홀에서 교수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총회를 열어 총장 불신임 문제를 논의했다.

▶22일자 A3면 참조

이에 앞서 7∼10일 교수 218명이 참여한 설문조사에서 90%(197명)가 연임을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협의회는 이 같은 결과를 공식적으로 발표하지는 않았다.

강석중 회장은 “설문 결과를 로플린 총장의 연임 여부를 결정할 3월 이사회에 곧 제출하겠다”고 말했다. 7월 14일 2년 임기가 종료되는 로플린 총장은 이 이사회에서 계약 연장에 반대하지 않으면 임기가 자동으로 2년 연장된다. 로플린 총장은 학교 안팎의 기대 속에 취임했지만 그동안 교수들과 끊임없이 갈등을 빚었다. 비현실적 대학 개혁안과 비민주적 운영이 갈등의 불씨를 낳았다는 지적이다. 반면 KAIST 교수들이 정당한 개혁을 거부한다는 비판도 있다.

▽갈등의 연속=정부는 KAIST 발전과 이공계 기피 현상 완화를 위해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를 영입했다.

로플린 총장은 2004년 12월 교수들이 작성한 학교발전방안을 폐기하고 ‘로플린 구상’을 발표했다. 제대로 내부 의견 수렴을 거치지 않았다. 이 구상의 핵심은 사립화와 종합대학화, 학부중심화 등 3가지. 정원을 현재 7000명에서 2만 명으로 늘리고 학기당 600만 원가량의 등록금을 받으며 학부에 의대, 법대, 경영대학원(MBA) 예비반을 만들어 학부 중심으로 운영하겠다는 것.

그는 “대학은 바이어(구매자)인 학부모가 원하는 인재를 육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KAIST 기획처장이 보직을 사퇴하고 교수 50명이 지난해 1월 로플린 구상 반대 서명을 벌여 총장에게 전달하는 등 크게 반발했다.

교수들은 이 구상이 △이공계 및 연구중심 대학을 포기하고 △고급 과학기술 인재 양성을 위해 설립된 KAIST의 정체성을 해친다고 주장했다.

교수와 학생 동문의 반발이 거세지자 과학기술부가 지난해 1월 25일 봉합에 나섰으며 로플린 총장은 “사립화는 와전됐다”고 해명했다.

이번에 KAIST 교수들이 연임 반대에 나선 주원인 중 하나도 로플린 총장이 이 구상을 다시 추진할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

로플린 총장의 언행과 일방통행식 리더십도 갈등의 원인. 그는 2004년 12월에는 이사회를 앞두고, 이달에는 졸업식(20일)을 앞두고 휴가를 갔다.

한 교수는 “1월에는 10∼15분씩 교수를 개별 면담해 연구 프로젝트에 대한 인센티브를 차등 제공하겠다고 나서 일부가 면담을 거부했다”며 “노벨상을 받았다고 모든 전공을 짧은 시간에 평가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 등은 부적절한 리더십의 단적인 예”라고 말했다.

▽교수들의 오해?=KAIST 교수들이 ‘글로벌 스탠더드’를 지향하는 로플린 총장의 구상에 오해를 하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KAIST 강창원(姜昌遠) 교무처장은 “정부로부터 독립된 재정을 확보하자는 총장의 구상을 사립화 등으로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로플린 총장은 교수들의 반발을 ‘실적이 없는 교수의 반항’ 정도로 치부하고 있다.

과기부 박항식(朴恒植) 과학기술기반국장은 “로플린 총장의 독자적인 의사결정에 불만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면서 “하지만 그가 ‘KAIST 글로벌라이제이션 프로젝트’를 실현시키는 등 학교 발전에 기여한 점도 평가돼야 한다”고 말했다.

로플린 구상을 둘러싼 찬반
로플린 총장

반대 교수들
―재정 확충으로 자립도 높여야
―미국 스탠퍼드대나 MIT대가 모델
학교 사립화―시기상조
―미국식 모델은 현실성 부족
학부대학육성 중점대학원대학
600만 원까지 인상학기당 등록금현행(80여만 원) 유지
―3배가량 확대학생 수―증원은 학생의 질 하락 초래
―법대, 의대, 경영대학원(MBA) 예비반 등 인기 학과 설치학부 커리큘럼 개편―인기 학과 신설 반대
―인문 사회 경영 등 인접 학문 수업은 바람직
―서비스산업으로의 산업 변화
―동남아 인력 유입
국가의 과학기술 인재 확보―국가적인 집중 육성
―과학사관학교 지향
―학생, 학부모KAIST의 시장―산업계, 정부
―탈산업화로 불가피
―시장에 맡겨야
이공계 기피 현상 인식 ―국가 경쟁력 확보 차원에서 지원 강화

대전=이기진 기자 doyoce@donga.com

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김훈기 동아사이언스 기자 wolfkim@donga.com

▼로플린총장 “연구실적 나쁜 교수들의 反개혁적 행동”▼

로버트 로플린(사진) 한국과학기술원(KAIST) 총장은 22일 본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교수들의 집단행동에 흔들릴 이유가 전혀 없다”면서 “이번 주말 한국으로 돌아가 연구실적을 높이기 위한 개혁 작업에 매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방학을 맞아 미국 캘리포니아 주 팰러앨토 자택에 머물고 있다.

다음은 일문일답.

―많은 교수가 재신임에 반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연구예산 배정 등의 문제를 둘러싸고 반(反)개혁적인 반응이 일부 교수들 사이에 나온 것은 사실이다. 1월 들어 교수 연구실적에 대한 검토(inspection)가 진행됐다. 연구실적이 좋지 않은 교수들(weak faculty)의 이런 반응을 예상했다. 한국의 대학뿐만 아니라 전 세계 어디서나 생기는 일이다. 하지만 대응 방식이 한국식 노사문제와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지만 재신임 반대 지지자가 너무 많다.

“나는 교수의 지지로 당선된 것이 아니라 정부가 임명한 총장이다. 실제 긴장관계는 나와 KAIST 교수 사이가 아니라 강도 높은 개혁을 요구하는 한국 정부와 교수 사이에 있다.”

―사태가 어떻게 귀결될 것으로 보나.

“자신 있다. 내가 잠 못 이루며 고민해야 할 정도의 일도 아니다. 내가 이긴다면, 7월 임기까지 변함없이 일하겠다. 지금까지 해 온 개혁 작업이 달라질 아무런 이유가 없다. 교수들의 이런 대응은 부작용(backfire)을 낳을 것이다.”

―지난 총장 생활은 어떠했나.

“힘든 과정이었다. 언어의 차이도 있었다. 글을 통해 생각을 전달했고, 이 방법이 (의사소통을 원활히 하는 데) 효과를 봤다고 본다.”

워싱턴=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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