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 해설/김동철]고건, 권력의지 없어 대통령 못한다?

  • 입력 2006년 2월 16일 17시 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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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국무총리직에서 물러난 뒤 차기 대통령선거 후보 여론조사에서 1년 반 동안 항상 압도적 선두권을 유지해온 고건 전 총리의 고민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아마 역대 대선에서 양자 구도를 벗어난 대결이 펼쳐진 적이 1987년 대선 한 차례밖에 없었다는 사실일 것입니다. 민주항쟁으로 쟁취한 이 직선제 대선에서 민주정의당 노태우, 통일민주당 김영삼, 평화민주당 김대중 후보는 지역을 기반으로 치열한 대결을 펼쳤고 결과는 노태우 828만, 김영삼 633만, 김대중 611만 표로 민주세력의 분열에 힘입은 노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됐습니다.

이후 1992년 대선 때 현대그룹을 등에 업은 정주영 씨, 1997년 대선 때는 집권세력인 민주계 일부의 지원을 받은 이인제 씨가 각각 제 3 후보로 나섰지만 한때 돌풍만 일으켰을 뿐 결과는 참패로 끝났습니다. 유권자들의 선택은 단 한차례 ‘특수 상황’을 빼고 항상 양자 구도로 귀결됐던 셈입니다. 3자 구도로 진행되던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가 정몽준 후보와 막판 단일화를 이뤄내 승리를 움켜진 것도 이런 흐름과 무관치 않을 것입니다.

고건, 권력욕은 있으나 권력의지 없어 대통령 못한다?

‘5·31’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당에 몸담고 있지 않은 고 전 총리의 거취를 둘러싼 많은 얘기가 정치권 주변에서 떠도는 것도 유권자들의 이런 선택 때문일 것입니다.

현재 한나라당의 유력 대선 주자로 박근혜 대표와 이명박 서울시장이 부상해 있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반면 열린우리당의 후보군으로 정동영, 김근태 두 상임고문이 거론돼 왔지만 이들이 과연 최후까지 살아남아있을 지에 대해서는 의문부호를 다는 사람들이 많은 게 사실입니다. 바로 이 대목이 여권 핵심부의 고 전 총리에 대한 부정적 시각에도 불구하고 여권 주변에서 그를 변수로 한 여러 시나리오가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이유일 것입니다.

고 전 총리 역시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적 행보를 빨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 김근태 고문의 ‘러브 콜’에 ‘주파수론’으로 응대하는 등 여권과의 교감에 신경을 쓰면서도 결정적 대목에 이르러서는 여전히 소걸음입니다.

그의 주변에서는 “여당 의원 일부가 참여하는 ‘고건 신당’이 다음달쯤 출범할 것”이라는 얘기와 함께 “지방선거 이후 선거 책임론으로 여권이 흔들릴 때를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대답은 “현재로서는 지방선거에 대한 어떤 계획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물론 좌고우면의 신중한 행보가 고 전 총리의 최대 장점이고 후보 여론조사에서 항상 선두권을 유지하게 하는 원동력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쿠데타를 감행했던 박정희 전두환, 6·29선언으로 국면을 전환한 노태우, 3당합당으로 돌파구를 찾은 김영삼, DJP 합작을 일궈낸 김대중, 영남지역에서의 선거 패배를 두려워하지 않은 노무현 등 역대 대통령 당선자 모두 결정적 시기에 결정적 선택을 했습니다.

“고 전 총리는 권력욕은 있으나 권력의지가 없어 대통령이 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한 중진 정치인의 분석처럼 고 전 총리의 정치 인생을 결정적 선택이 없었던 ‘이삭줍기’의 전형이라고 얘기한다면 무리일까요. 지방선거를 앞두고 그가 내릴 선택이 궁금합니다.

김동철 정치전문기자 eastphi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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