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동관]매니페스토

  • 입력 2006년 2월 2일 03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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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쓰자와 시게후미(松澤成文·48) 일본 가나가와(神奈川) 현 지사는 2003년 무소속으로 지사직에 도전하면서 공약의 우선순위, 기간, 재원을 구체적으로 밝힌 매니페스토(Manifesto·선언이란 뜻의 라틴어)를 발표했다. 치안강화를 위해 임기(4년) 내에 행정공무원을 1500명 줄이는 대신 경찰공무원을 그만큼 늘리고, 공무원 인건비 총액을 연간 2400억 엔 이하로 억제한다는 내용 등이다. 이 선거에서는 신인후보 14명이 매니페스토를 발표해 홋카이도(北海道), 이와테(巖手), 후쿠이(福井) 등 7곳에서 지사에 당선되는 선거혁명을 이뤄냈다.

▷매니페스토의 생명은 구체성과 검증 가능성이다. 마쓰자와 지사도 당선 후 3차례 현의회의 심의를 거친 뒤 ‘종합계획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5일간 예산심의를 방불하게 하는 질의응답과 토론을 거친 끝에 내용을 최종 확정했다. 유권자들은 매니페스토 이행실적만 평가하면 다음 선거에서 지지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매니페스토는 1835년 영국 보수당이 이 이름으로 선거공약을 발표한 것이 기원이다. 이후 영국에서는 선거 한 달 전까지 각 당이 50쪽 안팎의 매니페스토를 내놓는다. 1997년 총선에서는 토니 블레어 노동당수가 ‘5∼7세 아동학급 규모를 30명 이하로 줄이기 위해 1억8000만 파운드가 드는 엘리트 교육제도를 단계적으로 폐지하겠다’는 등의 내용을 담은 매니페스토를 발표해 집권에 성공했다. 반면 우리는 17대 총선 때도 각 당이 ‘국민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나라’ ‘G7경제선진국 도약’ 등 알맹이 없는 ‘포괄적 공약’만을 내놓았다.

▷5월 31일 지방선거를 앞두고 시민단체와 학계가 주축이 된 ‘매니페스토 선거추진본부’가 어제 발족했다. 후보들의 매니페스토 발표를 유도하고 검증해 정책선거를 이끌겠다는 것이 목표다. 선거 개입 논란도 예상되지만 2002년 대선 때처럼 경제성장률 5%를 공약했다가 상대 당이 6%를 내놓자 7%로 올리는 식의 ‘공약(空約)경쟁’이 되풀이되는 일은 없도록 소금의 역할을 다하기를 기대한다.

이동관 논설위원 dk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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