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아홉 살의 필독서 50권]<32>화첩기행

  • 입력 2005년 11월 24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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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 무엇인지 답을 하기는 쉽지 않다. 시대와 공간과 장르에 따라 조금씩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모든 다름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만은 분명해 보인다. 예술, 특히 현대예술이란 질문하는 일이다. 존재에 대해, 세계에 대해, 그리고 우리 삶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 말이다. 그 질문은 더 나은 세상에서 우리가 살 수 있어야 한다는 믿음을 속에다 담고 있다.

그 믿음 때문에 예술은 대중의 사랑을 받는다. 하지만 예술에 이런 행복한 순간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질문 때문에 예술은 자주 사회로부터 억압받고 격리되기도 한다. 지금 이 세계가 아닌, 더 나은 삶을 꿈꾸는 일이란, 이 세계에서 권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성가시고 위험한 일이기 때문이다. 권력이 예술을 반기지 않는 것, 예술가에게 행복보다는 불행이 가까이 있는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다.

그 점은 이 땅의 예술가라고 해서 조금도 다르지 않다. 우리의 예술은 오히려 더 많은 구속에 붙들려 왔다. 불행한 현대사, 전근대적 가치관, 과도한 물질 숭배, 예술의 정치적 악용 등이 교묘하게 얽힌 구속이 그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현실에 맞서 싸운, 그러다 많은 경우 좌절을 겪어야 했던 예술가의 삶을 들여다보는 일은 아프다. 하지만 그 아픔 속에는 어떤 이유로도 양보할 수 없는 우리의 자유가 숨쉬고 있다.

김병종의 ‘화첩기행’ 3부작은 그러한 우리 예술과 예술인의 아픔과 자유의지를 곡진하게 그려 보인 아름다운 작품이다. 한국 화단에 새바람을 불러일으킨 중진 화가이자 서울대 미대의 존경받는 교육자로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청년 시절 ‘대학 문학상’과 신춘문예를 휩쓸던 빼어난 글쟁이로서 저자는 자신의 역량을 이 안에다 아낌없이 쏟아 부었다. 그 자신 시서화(詩書畵)에 모두 능한 전천후 예술가이기에, 장르를 가리지 않고 앞서 예술의 길을 걸어간 사람들의 삶과 그 시절의 역사를 복원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 일을 해나간 그의 손길은 따뜻하면서도 겸손하다. 그 따뜻함과 겸손은 이 땅의 예술 상황에 대해서, 또 예술인으로 살기의 어려움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데서 우러나온다. 그래서 그는 예술의 귀와 천을 따지지 않는다. 그의 눈길과 손길을 잡아끈 사람들 가운데는 고고한 지사(志士)형 예술가가 있는가 하면, 저잣거리의 애환을 담아내던 대중예술가도 있다. 이건창과 황현이 앞의 예라면, 임방울과 이난영은 뒤의 경우에 속한다. 그들 모두가 우리 삶의 생생한 표정이자, 절절한 운명의 표현인 것이다.

또 우리 예술가라고 해서 그 삶의 터가 이 땅에 국한되지도 않는다. 독일 뮌헨의 하늘 밑에서 이미륵과 전혜린을 쫓아가고, 이념의 희생물이 되었던 이응로와 윤이상을 따라 프랑스 파리와 독일 베를린을 오가는 그 행로는 중국과 러시아, 일본으로도 이어진다. 이토록 길고 고된 여정을 저자는 홀린 듯이 누비고 다녔다. 무엇보다도 저자 자신이 자유롭기를 꿈꾸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자유의지는 “유랑하는 선배 예인들의 혼”과 함께 그의 글과 그림에 고스란히 실려 있다.

그래서일까? 이 책을 읽을 때마다 나는 예술가의 고뇌와 자유에 속절없이 감염당한다. 그 감염은 아프면서 또 행복하다.

박철화 문학평론가 중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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