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광표]‘국보 1호 교체’도 監査대상인가

  • 입력 2005년 11월 9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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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1호를 바꾸는 문제는 문화재 전문가들이 장단점을 면밀히 분석하고 이를 토대로 국민의 토론을 거쳐 신중히 논의해야 할 사안입니다. 그런데 왜 난데없이 감사원이 ‘역사 바로 세우기’를 앞세워 국보를 바꾸라고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감사원이 국보 1호 교체를 문화재청에 권고키로 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8일 문화재 전문가들 가운데는 고개를 갸웃하는 사람이 많았다. 숭례문(남대문)이 국보 1호로 적합하지 않다는 의견을 갖고 있던 일부 학자들마저도 “왜 감사원까지 나서서 그러지?”라며 석연치 않아 했다.

국보 1호 교체 문제는 여론 수렴 과정을 거치고 문화재 전문가들의 심의기구인 문화재위원회의 승인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단시간에 결정할 사안이 아니다.

그러나 현재 정부 분위기는 이미 교체 쪽으로 결론을 내린 듯하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쓴 광화문 현판 철거를 비롯하여 과거사 청산에 대해 강한 소신을 표출해 온 유홍준(兪弘濬) 문화재청장은 8일 “국보 1호를 바꾸자는 데 큰 이론(異論)은 없을 것”이라며 국보 1호 교체 추진 방침을 공개했다.

하지만 대통령이 내세운 과거사 청산 의제에 맞춰 미리 결론을 내고 여론몰이식으로 갈 경우 소모적인 논란만 불러올 우려가 크다. “국보 1호는 정말로 대한민국을 대표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만 들으면 그럴싸하지만 각론으로 들어가면 따져 봐야 할 문제가 한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감사원이 새 국보 1호 후보로 추천하는 훈민정음의 경우 현재 사립박물관인 간송미술관(서울 성북구 성북동)이 소장하고 있다. 이곳은 평소 유물을 전시하지 않고 매년 두 차례만 특별전을 연다. 국민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가 등의 문제도 고려 대상이 되어야 한다.

물론 현행 국보 관리 체계에 개선해야 할 점은 많다. 한 전문가는 “현재 국보 307건 가운데에는 국보로서의 가치에 미치지 못하는 유물이 있는 게 사실”이라며 “국보 전체에 대해 정확하게 가치 평가를 한 다음 국보 1호 재지정 여부를 논의하는 것이 순서”라고 지적했다. 국보 1호만 바꾸는 것은 집권세력의 ‘과거사 청산’ 실적 올리기에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문화재 보호 및 관리 체계를 발전시키는 일과는 사실상 무관하다는 설명이다.

이광표 문화부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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