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협정 외교문서 공개]‘굴욕 회담’ 재평가될까

  • 입력 2005년 8월 27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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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협상과 관련한 방대한 문서가 40년 만에 햇빛을 보게 됨으로써 한일회담을 둘러싼 재평가가 이루어질 전망이다.

그러나 협상 당사자인 한국과 일본 가운데 한쪽의 문서만 공개됐다는 점에서 평가에는 한계가 있을 수 있다.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번 문서 공개로 당시 13년 8개월 동안 협상에 직접 참여했던 정부 관계자와 이를 지휘한 정권 담당자들은 어느 정도 ‘굴욕회담’에 대한 누명을 벗을 수 있게 됐다는 게 문서 공개와 심사 작업에 참여했던 학자들의 견해다.

전현수(田鉉秀) 경북대 교수는 “나도 대학 다닐 때는 불평등 회담이라고 생각했다”며 “그러나 3만여 쪽을 검토한 결과 정부가 국익을 대변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고 밝혔다.

청구권 협상에서는 일본이 ‘청구권이란 말을 빼고 경제협력 자금으로 하면 돈을 더 줄 수도 있다’는 제의를 하기도 했으나 한국은 이를 거부했다. ‘청구권 협상을 위해 독도를 팔아먹었다’는 극단적 비난도 있어 왔으나 정부는 시종일관 ‘독도는 우리 땅’이란 입장에서 물러서지 않은 점도 확인됐다.

‘무상 3억 달러, 유상 2억 달러, 차관 3억 달러’라는 청구권 금액도 당시 상황에서는 얻어낼 수 있는 최대치였다는 평가도 적지 않다. 이런 사정 때문에 한일협상 문서 공개에 이어 ‘과거사 광풍’이 휘몰아칠 것이라던 관측은 힘을 잃게 됐다.

이원덕(李元德) 국민대 교수는 “당시 근대국가 100년의 경험과 막강한 외교적 관료적 능력을 보유한 일본을 상대로 신생국인 한국이 그만큼 교섭을 했다는 것은 학자의 양심을 걸고 평가할 부분”이라면서 “그러나 우리 국민의 욕심에는 못 미친 부분도 있다”고 말했다.

김창록(金昌祿) 부산대 법학과 교수는 “당시 정부 대표들이 열심히 일한 것은 인정하지만 좀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받을 몫을 다 받은 것은 아니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일본 측 문서까지 공개돼야 객관적 평가가 가능할 것이란 분석도 있다.

1962년 11월 김종필(金鍾泌) 중앙정보부장과 오히라 마사요시(大平正芳) 일본 외상과의 회동에서 ‘이면 합의’가 있었다거나, 공화당이 거액의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등의 의혹은 공식적인 외교 문서상으로는 확인이 불가능한 측면도 있다.

또 어업문제 등에서 한일협상을 대통령선거 등 국내정치와 연관시킨 점도 지적돼야 할 대목이다.

당초 일본 정부는 한국과의 협상의 전모가 드러나면 향후 북-일 수교 협상의 ‘카드’가 노출된다는 우려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북한이 이미 경제협력 문제에 초점을 맞추겠다는 입장을 보였기 때문에 큰 영향은 없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북한은 이번에 드러난 한일회담 과정을 철저히 분석해 최대한 많은 경협 자금을 받아내기 위한 전략을 짜는 데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윤종구 기자 jkmas@donga.com

▼日정부 “한국이 결정한 일…언급 않겠다”▼

일본 정부 당국자들은 한국 정부가 26일 한일회담 외교문서를 공개한 데 대해 “한국 정부가 자체적으로 판단해 결정한 만큼 이에 관해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공식 반응을 자제했다.

마치무라 노부타카(町村信孝) 외상은 “한국 측이 조치를 취했다고 일본 정부도 나서서 어떻게 할 성격의 문제는 아니다”고 말해 한국의 문서 공개에도 불구하고 일본 측이 기록해 보관 중인 문서를 공개할 뜻이 없음을 내비쳤다.

도쿄(東京)의 외교 소식통은 “일본 정부가 한일회담 문서 공개를 꺼리는 것은 북한과의 국교정상화 협상이 시작될 때 미칠 영향을 염려하기 때문”이라며 이런 자세는 당분간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아사히신문은 “노무현 정권은 당시 협상에서 논의되지 않았던 개인 배상문제 등을 새 이슈로 제기할 방침”이라며 “외교 마찰을 각오하고 식민지 지배와 군사독재 등 과거와 씨름하는 한국과 회담 내용을 공개하지 않는 일본 사이에 시각차가 심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도쿄=박원재 특파원 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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