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만나는 시]정끝별/‘정거장에 걸린 정육점’

  • 입력 2005년 8월 25일 03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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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걸린 육체는

한 근 두 근 살을 내주고

갈고리에 뼈만 남아 전기톱에 잘려

어느 집 냄비의 잡뼈로 덜덜 고아지고 나서야

비로소 사랑에 손을 턴다

걸린 제 살과 뼈를 먹어줄 포식자를

깜빡깜빡 기다리는

사랑에 걸린 사람들

정거장 모퉁이에 걸린 붉은 불빛

세월에 걸린 살과 뼈 마디마디에

고봉으로 담아놓고 기다리는

당신의 밥, 나

죽을 때까지 배가 고플까요, 당신?

- 시집 ‘삼천갑자 복사빛’(민음사) 중에서》

그럼요, 산 것들은 모두 죽을 때까지 배가 고프고말고요. 눈만 뜨면 밥 고프고 사랑 고프죠. 주는 대로 턱턱 받아먹다 보니 받아먹는 게 사랑인 줄 알았죠. 한 근 두 근 아무리 베어 먹어도 당신 안 아픈 줄 알았죠. 아침저녁으로 달달달 뚝배기에 고는 잡뼈가 당신 것인 줄 몰랐죠. 이토록 질기고 아늑하고 안전한 게 갈고리인 줄 몰랐다니까요. (가만, 내 뼈와 살도 넣으라고?) 생글생글 잘도 참더니 왜 그래요, 당신. 따지고 계산하는 건 이미 사랑 아니죠. 붉디붉은 첫 마음 식었나요? 잠자코 고깃국 내놔요, 덜 고아진 잡뼈 달달달 고아요, 내 사랑.

시인 반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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