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544>卷六.동트기 전

  • 입력 2005년 8월 24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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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유고(劉賈)와 노관은 진류(陳留) 부근의 든든한 성에 숨어들어 성문을 닫아걸고 굳게 지키기만 할 뿐 아무리 싸움을 걸어도 밖으로 나오지 않습니다. 거기다가 외황에 자리 잡고 수양성까지 차지한 팽월과 연결하여 서로 도우니 되레 우리 군사들이 몰리는 지경입니다. 대왕께서 몸소 납시어 도적들을 쓸어버리지 않으신다면 팽성으로부터는 쌀 한 톨, 병졸 한 명 성고에 이르지 못할 것입니다.”

뿐만이 아니었다. 그날부터 잇따라 여남은 성에서 위급을 알리는 유성마가 달려왔다.

“팽월이 고양(高陽)으로 밀고 들었습니다. 속히 구원이 없으면 지켜내기 어렵습니다.”

“곡우(曲遇)가 팽월에게 떨어졌습니다. 곡우를 지키던 장졸들은 하양(夏陽)으로 달아났으나, 하양 또한 오래 버티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하나 양(梁) 땅의 성이 떨어지는데 헤아려보니 금세 열 손가락을 넘었다. 그제야 패왕도 한왕 유방을 치러 가기를 단념했다.

“어쩔 수 없구나. 팽월 그 늙은 쥐새끼부터 먼저 잡아 죽여야겠다. 패현의 장돌뱅이는 팽월을 죽인 다음에 잡아 없애리라.”

패왕은 자신에게 다짐하듯 그렇게 말하며 군사를 먼저 양 땅으로 내기로 했다. 하지만 어렵게 되찾은 형양과 성고를 그대로 버려두고 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믿을 만한 수장(守將)을 남기기로 하고 장수들을 살피다가 해춘후(海春侯)에 대사마(大司馬)인 조구(曺咎)를 불러 말했다.

“장군에게 군사 1만을 남겨줄 터이니 새왕(塞王) 사마흔(司馬欣), 장사(長史) 동예(董예)와 더불어 성고를 지켜주시오. 많은 장졸을 남기지 못하지만 성안 백성들을 잘 다독여 그들과 함께 삼가 지키기만 하면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오. 설령 한군(漢軍)이 코앞에 다가와 싸움을 걸어와도 결코 맞붙어 싸우지 마시오. 그저 지키면서 한군이 성고 동쪽으로 밀고 나오지 못하게만 하면 그걸로 넉넉하오. 과인은 보름 안에 반드시 팽월이 날뛰는 양 땅을 평정한 뒤 돌아와 장군과 함께하겠소. 생사를 건 큰 싸움은 그때 해도 늦지 않으니 대사마께서는 부디 자중하시어 굳게 지키기만 하시오.”

조구는 젊은 시절 진나라에서 벼슬살이를 시작해 기현(夔縣)의 옥연(獄연)을 지냈다. 옥연은 감옥을 관장하는 관리의 부관(副官)으로 군현(郡縣)에서도 하찮은 벼슬이었다. 그러나 조구는 뜻이 커서 널리 호걸 사귀기를 좋아했는데, 그중에도 자신처럼 역양현((력,역)陽縣)에서 옥연 노릇을 하던 사마흔과 특히 가까웠다.

그 무렵 패왕 항우의 숙부인 항량(項梁)이 무엇인가 큰 죄를 짓고 역양현에 갇히게 되었다. 다급해진 항량은 바깥에 있는 조카 항우로 하여금 평소 잘 알고 지내던 조구를 찾아보고 구명(救命)을 부탁하게 하였다. 항우가 찾아가 숙부의 위급을 알리자 항량을 범상치 않게 보던 조구는 사마흔에게 글을 보내 항량을 놓아주도록 했다.

사마흔은 조구의 당부를 무겁게 여겨 항량을 풀어주었다. 지은 죄도 죄려니와 그 일로 자신이 초나라 명장 항연(項燕)의 아들이라는 게 진나라 관부(官府)에 밝혀질까 걱정하던 항량은 그 두 사람에게 매우 고마워했다. 항우도 아버지 같은 항량을 구해준 그 두 사람을 아주 좋게 기억했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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