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사상 첫 국정원 압수수색…수색과정 미묘한 긴장감

  • 입력 2005년 8월 20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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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과하십시오”서울중앙지검 관계자들이 19일 서울 서초구 국가정보원에 대한 압수수색을 하기 위해 차량을 타고 정문에 도착한 뒤 미리 받아놓았던 방문증을 국정원 직원에게 건네고 있다. 연합
“통과하십시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들이 19일 서울 서초구 국가정보원에 대한 압수수색을 하기 위해 차량을 타고 정문에 도착한 뒤 미리 받아놓았던 방문증을 국정원 직원에게 건네고 있다. 연합
19일 사상 초유의 검찰 압수수색이 실시된 서울 서초구 국가정보원은 침통한 분위기였다. 국가 최고 사정기관과 최고 정보기관 간에 미묘한 긴장감도 감돌았으나 국정원 직원들은 대체로 체념하는 분위기였다.

“막 밀고 들어가다간 총격전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검찰 간부의 ‘농담’은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든 이번 ‘사태’를 압축적으로 상징한다.

▽무장요원 대기, 그러나 충돌은 없었다=서울중앙지검 도청 수사팀 검사 8명과 수사관 등 40여 명이 청사를 출발한 것은 오전 8시 40분경. 대검찰청 컴퓨터 전문가와 민간 통신장비업체 전문가도 참여했다.

한 장소에 대한 압수수색에 검사 8명이 투입된 것도 전례가 없는 일이다. 2003년 2월 SK그룹에 검사 4명이 투입된 사례가 있었지만 당시엔 압수수색이 여러 장소로 분산됐기 때문이었다.

압수수색팀이 도착하기 10여 분 전쯤인 오전 8시 50분경부터 국정원 직원 5명이 본부 정문에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국정원에 미리 통보가 돼서인지 통상적인 신분 확인 절차는 생략됐다. 압수수색팀은 곧바로 겹겹이 놓인 바리케이드를 통과했다. 무장한 요원들이 지키고 있었으나 충돌은 없었다.

불과 30여 초 만에 이들을 태운 승합차 1대와 소형버스 1대, 승용차 4대가 외부인 출입이 엄격히 제한된 국정원 내부로 직행했다.

현장 총괄 지휘는 유재만(柳在晩)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이 맡았다. 유 부장은 김대중(金大中) 정부 시절의 국정원 도청 부분 수사를 이끌고 있다.

▽친절한 국정원?=검사 7명의 지휘에 따라 압수수색팀은 7개 팀으로 나뉘어 각자 맡은 장소를 뒤졌다.

압수수색은 국정원 직원의 안내에 따라 압수수색 영장에 적시된 장소에 한정해 이뤄졌다. 국정원 내부 시설 자체가 극비여서 수사팀이 장소를 찾기 힘들기 때문에 ‘안내’가 필수적이라는 게 검찰의 설명.

서울중앙지검 황교안(黃敎安) 2차장은 압수수색 장소와 관련해 “(영장에) 세세하게 특정된 곳도 있고 포괄적으로 된 부분도 있다”고 말했다.

우선적인 압수수색 대상은 2002년 10월 해체된 도·감청 담당 부서였던 과학보안국 사무실과 장비, 자료 등을 보관 또는 폐기했던 장소로 추정된다.

그러나 압수수색 영장에 ‘포괄적’인 장소도 있다는 점에서 그간 알려지지 않은 다른 비밀문서 보관 장소 등도 구석구석 뒤졌을 가능성이 있다. 황 차장은 “어디를 (압수수색) 해야 할지 모르고 헤매는 사이에 다 치워 버릴 수 있다”며 “그동안 어디를 어떻게 하는 게 효율적인지 나름대로 분석하고 준비했다”고 말했다.

본부에 대한 압수수색에서 별다른 성과가 없을 경우 검찰은 전국에 있는 국정원 지부와 안전가옥(안가) 등에 대해서도 추가 압수수색을 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외부인 참여 논란=이날 압수수색에는 민간 통신장비 업체 전문가까지 참여했다.

그러나 국가 최고 정보기관에 대한 압수수색에 민간인까지 동원한 게 적절한지에 대한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특히 감청 장비 등은 국가적으로도 최고의 보안이 요구되는 시설이라는 점에서 앞으로 보안 유지가 안 될 경우 또 다른 파장도 예상된다.

국정원 직원들 사이에선 민간인 참여에 불만이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전 통보와 양해?=이날 압수수색은 외견상 전격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보이지만 수사 초기부터 어느 정도 예고가 된 것이었다.

검찰 고위 간부는 “확인해 줄 수 없다”고 했지만 국정원에 미리 통보까지 한 흔적도 곳곳에서 발견됐다. 국정원 직원들이 ‘안내’를 위해 미리 정문에 나와 기다리고 있었고, 압수수색 정보가 사전에 유출됐지만 당초 예정된 시간에 그대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통상적으로 검찰은 압수수색 예정 사실이 밖으로 새나갈 경우 일정을 늦추거나 앞당기는 게 관행이다.

이 같은 사전 통보는 검찰로서도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는 분석이다. 국정원은 24시간 고도로 훈련된 요원들이 중무장한 채 경계 근무를 서고 있다. 다른 기업이나 정부 부처의 경우처럼 문자 그대로 ‘전격적’으로 들이닥쳤다간 자칫 불상사가 생길 수도 있다.

또 형사소송법(제110조)은 군사상 비밀을 요하는 장소는 책임자의 승낙 없이 압수수색을 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김승규(金昇圭) 국정원장의 승인 없이는 법적으로 강제적인 압수수색이 불가능하다.

김 원장이 5일 “검찰의 압수수색에 응하겠다”고 ‘사전 승인’을 했지만, 검찰은 이날 현장에서 유 부장이 재차 ‘승인’ 절차를 밟은 것으로 전해졌다.

▽국정원 직원들 침통=검찰의 압수수색이 진행되는 동안 국정원 직원들은 서로 말이 없었다고 한다. 국정원의 한 간부는 “서로 얘기를 하지 않아 분위기가 착 가라앉아 있다”고 말했다.

다른 한 직원은 “이번 기회에 모든 걸 털고 새로 태어날 수밖에 없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국가 최고 정보기관에 이런 식으로 민간인들까지 들어와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들을 들여다보는 게 적절한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조용우 기자 woogij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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