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눈]폴 크루그먼/집 사고팔며 먹고 사는 미국

  • 입력 2005년 8월 19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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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이웃에 살던 러시아 출신 이민자 한 분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필자에게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미국에 온 뒤로 사람들이 당최 뭘 만드는 걸 보지 못했습니다. 이 나라는 도대체 무엇으로 돈을 법니까?”

요즘 같으면 이렇게 답하고 싶다.

“미국인들은 집을 사고팔면서 먹고 삽니다.”

2000년 12월 이래 미국의 제조업 부문 고용은 17% 줄었다. 반면 같은 기간 미국 부동산중개인협회(NAR)의 회원 수는 58% 늘었다.

‘부동산 붐’은 두 가지 방법으로 일자리를 창출한다. 먼저 주택 건축이 늘어 건설경기가 호전된다. 1980∼2000년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평균 4.25%가 주택 신축에 사용됐다. 올해 2분기에는 그 비율이 5.98%로 크게 상승했다. 이 차이는 매년 약 2000억 달러가 추가로 지출된다는 것을 뜻한다. 이에 따라 약 200만 개의 일자리가 새로 생긴다.

둘째, 주택가치가 상승하면 소비자 지출이 늘어난다. 지난 5년 동안 주택가격이 엄청나게 올랐다. 미국 전체로 따져 약 5조 달러가 더 생긴 셈이다. 일반적으로 주택가치가 1달러 상승할 때마다 연간 소비자 지출이 3% 늘어난다고 한다. 각 가정이 저축을 줄이고 주택 담보대출을 늘리기 때문이다. 이 기간 소비자 지출이 약 1500억 달러 늘어나 약 150만 개의 일자리가 창출된 것으로 추산된다.

미국 경제에서 이만큼의 고용창출 효과를 가진 것은 군비 증강 외에는 없었다. 미국 경제정책연구소(EPI)는 지난 4년 동안 군사비 지출의 증가로 민간부문에서 약 130만 개의 일자리가 늘어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조지 W 부시 미국 행정부는 감세정책으로도 일자리가 많이 창출됐다고 강조하지만 ‘부동산 붐’의 효과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다. 그야말로 ‘부동산 주도 경제’다.

문제는 ‘부동산 주도 경제’를 통한 경기회복이 실망스러운 수준이라는 것이다. 미 예산정책연구센터(CBPP)와 의회예산국(CBO)이 각각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의 경제회복 수준은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시 행정부는 지난달의 고용 증가세가 놀랄 만한 수준이라고 환호했지만 클린턴 행정부 시절 그보다 성과가 좋았던 달이 68개월이나 된다.

경제는 여전히 팽창하고 있지만 전망은 우울하다. 부동산에 너무 많이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 주택가격의 거품이 꺼지기 시작할 때 그로 인해 만들어진 일자리도 함께 사라질 것이다. 미국의 부동산 붐이 주로 외국의 돈을 빌려 유지되고 있다는 점은 더욱 우려할 만하다.

경제학 교과서에 따르면 생산력을 높이는 데 돈이 쓰인다면 외국에서 돈을 빌리는 것도 괜찮다. 19세기 미국이 철도 부설을 위해 유럽에서 돈을 빌렸을 때는 (철도 부설로) 생산력이 늘어나 빚을 갚을 능력도 향상됐다. 하지만 지금 미국은 돈을 빌려 생산력 확충에 쓰는 것이 아니다. 1990년대 후반과 비교할 때 설비투자에 쓰는 돈은 주택 건축에 쓰는 돈에 비해 크게 줄었다.

필자의 이웃이 던졌던 질문에 대해 좀 더 정확히 답변해 보자.

“오늘날 미국인들은 중국에서 빌린 돈으로 집을 사고팔면서 먹고 삽니다.”

이는 결코 지속가능한 방식은 아닌 것 같다. 현재 미국 경제는 ‘집만큼 안전하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불운하게도 현재의 주택가격과 엄청난 대외채무를 고려할 때 집은 전혀 안전하지 않다.

폴 크루그먼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프린스턴대 교수

정리=김재영 기자 redfo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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