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황호택]청와대 칼럼니스트들

  • 입력 2005년 8월 18일 03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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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은 글쓰기를 좋아한다. 연정(聯政) 편지만도 네 차례 썼다. 7월 28일에 쓴 ‘지역구도 등 정치구조 개혁을 위한 제안’은 원고지 50장 분량이 넘는다. 이렇게 긴 글을 쓰자면 전업(專業) 글쟁이도 여러 날 걸린다.

광복 60주년 경축사는 비서실에서 초안을 올렸지만 노 대통령이 전면 개고(改稿)했다고 한다. 대통령이 연설문을 새로 쓰다시피 하면 비서관들의 독회(讀會)는 형식으로 흐르기 쉽다. 경축사의 과거사 공소시효(公訴時效) 발언이 혼선을 빚자 노 대통령이 부연 설명을 하는 일이 벌어졌다. 노 대통령은 “위헌 시비가 있을 수 있는 곳은 전체로 보면 극히 미미한 부분”이라며 언론 탓을 했지만 대통령이 연설문에 손을 많이 대다 보면 비서관들이 토를 달기 어려워져 이런 일은 자주 일어날 것 같다.

대통령이 꼭 글을 잘 쓸 필요는 없다. 글 잘 쓰는 비서를 두면 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글쓰기를 좋아해 저서를 여러 권 냈지만 연설문은 담당 비서관에게 거의 맡겼다. 어떤 대통령은 중요 연설문의 경우 여러 곳에 맡겨 놓고 그중 좋은 것을 골라 썼다.

언론의 왜곡 보도를 시정하겠다며 시작된 ‘청와대 브리핑’이 520호까지 나왔다. 김병준 대통령정책실장은 ‘참여정부의 종이비행기’라는 글에서 ‘참여정부와 국민 사이에 가로놓인 거대 언론이라는 굴곡 심한 유리벽을 넘어 갇힌 사람이 구원을 요청하듯 종이비행기를 날려 왔다’고 썼다. 노 대통령이 ‘청와대 브리핑’을 가끔 읽는 것이 알려지면서 비서관과 행정관들이 ‘종이비행기 칼럼’에 신경을 쓰는 분위기라고 한다.

이근형 여론조사비서관의 칼럼 ‘대통령 지지도 감상법’은 대통령 지지도가 낮은 것을 표본 수가 적고 무응답층이 많은 여론조사의 오류와 조사 주체의 의도 탓으로 돌렸다. 언론기관이 대통령 지지도 조사를 보도 논조나 방향의 정당성을 지원하기 위한 도구로 활용한다는 것이다. 대통령의 지지도는 오르기도 하고 떨어지기도 한다. 지지도가 낮은 여론조사에 불순한 의도가 담겨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억지다. 친노(親盧)매체의 여론조사 결과도 비슷한 흐름을 보이는 것은 반노(反盧)로 변심했기 때문인가.

양정철 홍보기획비서관은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를 향해 ‘당신의 대안은 무엇인가’라는 칼럼을 써 여러 신문에 인용 보도됐다. 강대진 행정관이 쓴 ‘민족지가 성공하는 10가지 비결’이라는 칼럼은 동아일보 데스크 칼럼을 패러디한 것이다. 비서관은 제1야당 총재를 향해 직격탄을 날리고, 그 아래 행정관은 메이저 언론사의 역사를 왜곡하며 험담을 퍼붓는다. 그냥 반론을 펴면 되지 신문사는 왜 걸고넘어지는가.

이정우 전 정책기획위원장은 청와대를 떠나서도 기고를 했다. 그는 ‘분배와 성장은 동행(同行)’이라는 칼럼에서 ‘지금의 불경기와 국민의 고통은 지난 정부가 물려준 벤처거품, 카드거품, 부동산거품의 대가’라고 지적했다. 여기서도 언론 탓은 단골 메뉴다.

‘종이비행기 칼럼’은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자기들이 잘못해 놓고도 언론 탓 하고, 야당과 언론을 적대시하고, 논리에 안 맞는 변명으로 넘쳐 난다. 청와대에 칼럼니스트가 너무 많다. 이들이 칼럼 쓰는 시간도 국민 세금으로 환산하면 적잖은 액수가 될 것이다.

황호택 논설위원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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